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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4 강 메시지(강해_아산 UBF)

작성자서 아브라함|작성시간23.03.05|조회수72 목록 댓글 0

2023년 3월 5일 아산 UBF 주일메시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말씀 / 사도행전 4 : 1-31

요절 / 사도행전 4 :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자기 힘이 없는 사람도 있고요, 자기 성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을 세울 만한 성실이 없기도 하고요, 

 오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이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을 일어나게 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라고 증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부활 전하는 것을 싫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두개파가 제사장 그룹이었고 제사장들이 성전에 대한 권리를 가졌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증언하는 것을 심각하게 보았습니다. 사두개파는 부활과 영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파기 이렇게 믿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올바로 공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않았기에 부활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종교권력을 이용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이틀 동안 감금했습니다.

 그들은 공회를 열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대제사장 가문이 다 모였습니다. 이들은  공회에 사도들을 세우고 심문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들이 문제 삼는 것은 자기들의 허락이 없이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신성모독으로 죽여야 한다 의결한 곳이 공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출교 명령을 내려 사회적 사망상태로 만들 수 있는 곳이 공회입니다. 

 이곳에 선 사도 베드로가 담대하게 대답하였습니다. 9-12절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베드로는 일어난 일을 실증적으로 밝혔습니다.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 입니다. 날 때부터 보행장애인이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입니다. 사람의 노력이나 자연치유로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입니다. 베드로는 보행장애인이 일어나 걷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았음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이 왜 권세 있는지 증언 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권세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힘없고 나약하게 보인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지으시는 주의 나라 가장 큰 집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다시 살아 하나님의 아들로써 영광과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12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구원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 구원을 위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오늘 요절 말씀입니다. 오늘 요절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요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구원의 이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의 근본이요 핵심이요 기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지 자기계획, 자기계산, 자기판단, 자기성실, 자기노력을 의지하려 하면 반드시 한계를 맞이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권세는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버림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 받으셨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의 주로 세우시고 만유 위에 세우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권세 있는 이름, 왕의 왕, 주의 주의 권위를 얻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 부활은 권세로 역사하고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사람에게 벌떡 일어나 걸으며 뛸 수 있는 변화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두려움이 많은 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명해 지려는 욕심, 더 가지려는 욕심, 안일하게 지내려는 욕구가 강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입으로는 말하는데 사실 알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변화를 주시고 힘을 주시는 근원입니다. 부활을 믿어 예수님의 고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에게 능력과 권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고난을 배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과 권위를 내려주십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고난을 피하며 사니까 매사가 다 두려운 것입니다. 부활을 못 믿고 고난을 회피하며 사니까 연약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을 제대로 믿지 않고 어떤 것이 고난인지도 모르니까 자기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가 힘이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의 내용을 보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하는 심문에 대하여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이라 말하며 논리를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 권세가 나타나는 실증적인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의 근거를 보이며 말을 하니, 사두개인들도 듣고 반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캠퍼스에 가서 예수님을 전하는데에도 이런 실증이 필요하겠지요? 문제는 날이면 날마다 불치병자를 고쳐가며 예수님의 능력을 실증하는 일은 지금 시대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구름을 제어하고 세균과 바이러스의 증식과 활동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일은 지금으로써는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없는 메시지만 전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실제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내가 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하는 일을 시도하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내면이 성령의 비에 충만하게 젖는 일은 시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처럼 나병환자를 낫게 하는 일에 나서기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십자가 후에 얻으신 부활을 바라보면서 나의 오그라진 마음, 염려하고 근심하느라 찌들고 오그라진 마음을 깨끗하게 펴는 일에는 얼마든지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습니다. 

 나의 변화, 나의 성장, 나의 성숙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나타나면 우리도 사도 베드로와 같이 설득력 있고 힘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의 청년들도 목자가 자기 가정을 오픈하고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것이 인간적인 이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을 인정하고 말씀을 공부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목자의 희생으로 나타났고, 예수님의 구원이 인생문제의 해법으로 드러난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말로써만 사람을 대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일어나는 일이 내 삶과 생활에서부터 먼저 일어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실증을 가지고 논리를 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로만 입으로만 해가지고는 청년들이 귀 기울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말로써 재미로써는 더 나은 것을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희생하지 않는 시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절대로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시대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희생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헌신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면 이것보다 더 우월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큰 결단과 희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잘 들어주는 것, 나의 오랜 습관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버리는 것,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인격 다치지 않게 하려고 잠시 덮을 줄 아는 것, 이런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서 주를 증언하겠다고 하니 듣는 사람들이 귀 기울일 일이 없는 것이지요!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은 할 말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중시해온 사람들입니다. 현세에서의 구원을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눈앞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아는 보행장애인이 벌떡 일어나 서 있습니다. 사도들은 배우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공회 앞에서 담대하고 지혜롭게 증언하는 큰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뚜렷한 현실에서의 변화와 능력 앞에서 그들은 궁색해졌습니다.

  15-18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유명한 기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메시지도 전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위협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 19,20절“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관원들은 사람눈치를 보는 자들이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도들을 벌줄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풀려나자 교회는 다함께 기도했습니다. 사도들과 성령 충만한 교회가 핍박 속에 드린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첫째, 핍박을 하나님 주권 편에서 영접하였습니다. 23-28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경말씀을 기초로 핍박을 영접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여기지 않았습니다. 현실의 핍박에 대하여 사도들은 말씀을 기초로 영접하였습니다. 핍박하는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적개심을 품기보다도 핍박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영접하였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성령께서는 선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일어나는 것임을 말씀을 기초로 영접하였습니다. 

  둘째, 복음전파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핍박 중에서 복음전할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초대교회는 핍박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29절말씀은 핍박받는 상황을 ‘고려하여 주시고’, ‘주목하여 주시고’라는 말입니다. 영어성령에는 ‘consider', 'behold', 'take note of'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들의 핍박이 있으니 이를 감안하여 우리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힘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셔서 표적과 기사를 주사 복음이 더 견고하고 확실하게 증거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기도가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기도를 받으셨다는 사인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더 강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은 위협과 핍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해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핍박을 받은 것은 큰 유익입니다. 교회는 여러 나라 여러 시대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복음이 순수해지고 신앙이 정제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외적인 핍박을 통하여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복음역사는 더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 자체에 몰입 하는 것 보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역사는 외적인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위축되는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위협과 핍박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 강하게 하시고 강하게 연단된 사람들을 더욱 크게 복음전파에 사용하여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을 지키시며 능력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도우십니다. 위협과 심문받는 중에도 지혜와 용기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도우십니다. 외적인 어려움, 핍박은 오히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게 하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먼저 성령을 의지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말할 때, 내면의 변화와 우리 삶의 변화를 이루고 이를 드러내며 예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십자가와 부활은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권세입니다. 우리의 변화가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져서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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