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 제 3 강 메시지_아산UBF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말씀 / 누가복음 18:1-8
요절 / 누가복음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기도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우리 기도생활 자세에 대하여 교훈을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삶의 비결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을 밝히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도는 특정한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서 지속되어야 호흡과 같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24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기도만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을 사는 의미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낙심’은 '지쳐서 포기하다', '용기를 잃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기도가 응답 안 되는 것인가 의심하고, 기도가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생각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보면, 앞 장인 누가복음 17장에서 인자가 올 날, 즉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때, 성도들은 큰 시련과 박해를 겪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믿음을 지키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유지하는 통로입니다.
불의한 재판관 (2-3절)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이르되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인물로 불의한 재판관을 소개하십니다. 이 재판관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법과 의를 무시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권리나 고통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이익과 편의만을 추구했습니다.
신명기 1장 16-17절에서 모세는 재판관들에게 "너희는 너희 형제 간의 송사를 듣고 각 사람과 그의 형제 간이나 그와 거류민 간에 공의로 재판하되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 것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이니라"고 명령했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공의를 실행하는 자였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재판관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재판관 앞에 한 과부가 나타났습니다. 과부는 당시 가장 약한 계층에 속했습니다. 남편도 없고, 권력도 없고, 재판관에게 줄 뇌물도 없었습니다. 이 과부는 재판관에게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과부는 어떤 원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녀의 권리가 침해당했습니다. 그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판관을 찾아가 정의를 구했습니다.
끈질긴 간청 (4-5절)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재판관은 처음에 과부의 간청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자주" 재판관에게 갔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거절당해도 다시 찾아갔고, 문전박대를 당해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재판관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재판관이 과부의 청을 들어준 것은 그의 양심이나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과부의 끈질긴 간청이 너무 귀찮고 번거로웠기 때문입니다.
'번거롭게 하다'는 말은 '수고를 주다', '괴롭히다'는 의미입니다. 재판관은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가 과부의 끊임없는 방문에 지쳐버렸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 사용된 동사가 권투에서 상대방의 얼굴을 때린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고 합니다. 재판관은 마치 과부가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것 같은 스트레스를 느꼈습니다.
결국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완전히 부패한 재판관이, 아무런 힘도 없는 한 과부의 끈질긴 간청 앞에서 굴복한 것입니다. 과부가 가진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뿐이었습니다. 그 끈기가 불의한 재판관조차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로 든 이 과부의 모습은 기도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기도는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끝까지 하는 끈기를 동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응답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은 성숙해지고, 우리의 기도는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명시하신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낙심하기 쉽다는 현실을 전제하고 계신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 생활에서 낙심은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영적 위기입니다. 기도의 성패는 결국 낙심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낙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도 응답의 지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즉각적인 응답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때로는 해가 바뀌어도 우리가 원하는 응답은 오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다음,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낙심합니다. 기도생활 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와 불완전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죄 많은 내가 감히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게 되고, 기도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의로움이 있어야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속삭이지만,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의 악화 때문에 낙심합니다. 기도하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데 병이 더 깊어지고,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데 관계가 더 멀어지고, 재정 문제를 위해 기도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 앞에서 우리는 "내가 기도를 잘못하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은 아닌가?"라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때문에 낙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하면 즉시 응답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독 나만 응답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더 깊은 좌절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기도는 응답받는데, 왜 내 기도는 응답이 없는가?"라는 생각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낙심은 기도를 포기하게 만들고,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낙심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입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는 정의를 얻을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외에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진정한 승리는 낙심을 이겨내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끈기 있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우리를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가십니다.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원하심 (6-7절)
"주께서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을 강조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조차도 끈질긴 간청에 응답했다면, 하물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확실하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신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이 어떤 권력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가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택하신 자들이 "밤낮 부르짖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속적이고 간절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과부가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간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부르짖다'는 말은 단순히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원한을 풀다'는 것은 정의를 실행하시고, 억울함을 해결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불의와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공의로우신 심판을 행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변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하시고 정의를 실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거나 무관심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더 큰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속히 신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속히'라는 말은 '신속하게', '지체 없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기도에 민첩하게 반응하시고, 게으르지 않으시며,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보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연시키시는 데에는 언제나 선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 기다리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더 간절히 구하고,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해 기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신원하신다는 약속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나 방식과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최선이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질문으로 마치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것은 수사학적 질문으로, 깊은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 과연 세상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염려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과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핍박과 시련이 심해지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며,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은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고, 기도를 포기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 때,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믿음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는 경고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도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고, 영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통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청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간청에 응답했거늘, 하물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확실하게 응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지혜와 사랑으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낙심을 이겨내야 합니다. 기도의 진정한 승리는 응답을 받는 것보다 낙심을 이겨내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낙심은 기도를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협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로 발견되어야 합니다.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와도, 어떤 유혹과 도전이 있어도, 우리는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빠른 결과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기다림과 인내는 점점 더 어려운 덕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다른 원리로 운영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과부처럼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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