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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특강 제 3 강 메시지(빌립의 전도와 대화)_아산UBF

작성자서 아브라함|작성시간26.02.18|조회수69 목록 댓글 0

2026년 특강 제 3 강 메시지_아산UBF

달려가 그 수레 가에 붙으라


본문 / 사도행전 8:26-40

요절 / 사도행전 8 : 30


사도행전 8장은 초대 교회가 박해로 받던 때를 배경으로, 집사 빌립이 어떻게 에티오피아 관리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보여줍니다. 본문에는 복음 전도자가 해야 할 다섯 가지 구체적인 절차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양들에게 다가가는 절차와 방법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새 학기를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한데, 학기초가 아니라도 우리가 언제든지 선교하는 주의 제자로써 오늘 말씀을 기억 하여야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의 사마리아 여자는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MZ세대의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대화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양을 돕고 대화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관리는 스스로 말씀을 사랑하는 좋은 양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양, 좋은 양과는 어떻게 대화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8장 5~8절을 보면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새로운 선교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행 8:5-8).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기적이 일어나며,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빌립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 8:26) 사마리아를 떠나 '광야 길'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일반물리를 배워보면 멈춰 있는 물체가 이동을 시작하는 그 순간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을 중단하는 그 순간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마리아는 지금 새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빌립에게는 좀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빌립은 일어나 갔습니다(27절). 성령의 방향에 대한 순종은 새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단 한 사람을 위하여 광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 전도의 첫 번째 절차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빌립은 누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먼저 그가 있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27절을 보면 빌립이 찾아가 만날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로,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빌립이 광야 길로 갔을 때, 그곳에 마침 그 관리가 수레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찾아감'은 전도자의 본질적 자세입니다. 예수님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산을 넘고 들을 건너셨습니다(눅 15:4-7).  광야는 사람들이 없는 곳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신 곳이 광야인데 광야에서 만날 사람은, 고립되어 있을 것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곳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곳은 화려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전략적인 곳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관계 맺기에 합당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준비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 중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자기 계획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자기 가고자 하는 방향과 계획이 너무 뚜렷한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광야로 나가는 일에 순종한 빌립에게 성령께서는 수레에 가까이 나아가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빌립이 달려가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레는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움직이니까 수레입니다. 빌립은 수레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자신이 달려가 수레의 속도에 맞춘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직분이 양들을 섬기는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목자이기에 영적 역량이 더 우위에 있고, 목자이기에 말씀에 대한 특별한 능력과 은사가 있고, 목자가 인생을 더 살았고, 목자가 신앙생활을 더 오래 하였기에 목자의 논리에 따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말만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속도에 맞추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인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격이란 나를 누구로 인식하느냐 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아는 것이 많아’, ‘나는 착해’, ‘나는 선한 의도로 사는 사람이야’. 이런 자기 인식이 강하다면 오만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 어떤 부담이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해나갈 때 이것이 상대방을 고려하는 것일까?’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관계에서의 ‘인격’이 부족한 것입니다. 내가 편한 시간에, 내가 정한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려 한다면 그 대화는 ‘섬기는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빌립은 한 양을 섬기러 갔습니다. 상대방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 사도행전이 기록하는 대화의 두 번째 자세입니다. 그 사람의 속도, 그 사람의 현재 위치에 자신의 인격을 맞추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빌립이 달려가 수레 가에 붙었을 때, 먼저 한 것은 ‘관찰’이었습니다. 그는 수레 안에서 그 관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았습니다. 30절은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라고 기록합니다. 빌립은 그 관리가 이사야서를 소리 내어 읽고 있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보통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달려가면서, 수레 가에 붙으면서, 이 관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였습니다. 양의 상태를 아는 것이 모든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단번에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양의 상태를 알고 대화를 하여야 하는데, 양의 상태를 알지 못하니까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관찰하는 것입니다. 관심을 주고 경청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기꺼이 소모하며 투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발전시키는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이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이슈를 알기 위하여 ‘초청하여 밥도 먹는 것’이고 상대방의 이슈를 알아내고자 ‘비즈니스 골프’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제대로 하는 사람은 대화해야 할 사람이 친 코스로 자기도 공을 보내서 공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것이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상대방의 이슈 파악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상대방더러 자기 이슈에 따라오라고 줄기차게 자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관계 증진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은 재주나 달란트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관찰에서 빌립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는 그 에티오피아 관리의 영적 배고픔을 발견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왔다 돌아가는 길에 수레 안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사람, 그 영혼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저가 소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으며,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행 8:32에서 인용) 그가 읽고 있던 본문은 이사야 53장이었습니다. 빌립의 관찰은 그 사람의 내적 갈망과 영적 상태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빌립의 다음 행동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이슈를 중심에 놓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행 8:30)  탁월한 질문입니다.  '당신이 읽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묻습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이 자신의 필요를 인식하게 합니다. 대화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줍니다. 그의 이슈에 빌립이 가서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도 한참동안 여인의 이슈를 가지고 대화를 하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대화 시작부분에서 모세의 이슈를 가지고 대화하신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역시 빌립은 대화 상대방의 이슈를 가지고 질문하여 대화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전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화의 시작은 대화 상대방의 이슈에서 출발하여야 함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설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앞으로 손자들을 볼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명절을 기다립니다. 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여러 친척들이 와서 용돈을 줍니다. 용돈을 그냥 주지 않습니다.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고모들이 오면 오랜만에 보니까 ‘많이 컸구나’ ‘오! 벌써 이만큼 컸어?’ 관심 가져주고 주목해 줍니다.
 UBF가 70년대 80년대 큰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대학생들 부모의 평균학력이 중졸이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대학생들에게 ‘오! 형제님! 다윗처럼 음악의 은사가 있네요!’ ‘오! 형제님! 성경을 참 잘 푸네요! 말씀의 은사가 있어요!’ 해주면 학생들이 좋아하였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이제는 목자가 되어서 후배들, 자녀들에게 관심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릴 적 명절에 친척들이 관심 가져주고 많이 컸다고 칭찬하고 찬사를 보내줄 때 그 으쓱한 기분을 나이가 40이 되어서도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받기를 원하고 있다면 유아기 습관을 오랜 시간 지속하는 일입니다. 과거 학생 때 받은 관심을 계속 받고 싶어서 취업할 때가 되었지만 취업하러 나가려 하지 않고 양들 센터에 데려 오기만 하려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양회를 자기요회 신입생 참석명수, 소감강사 세워서 동역자들보다 자존감 높이는 이벤트로 만들고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센터는 양들의 이슈를 가지고 대화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센터에서 어른 대접 받고 있으면 그 센터는 양들의 이슈에 접근하고 양들의 이슈를 가지고 대화하여 신뢰의 통로를 만드는 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혹시 망하지 않을까?’ 장래에 대한 염려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쓰시는 큰 인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자 내적투쟁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문제를 넘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 갖는 훈련을 쌓아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이슈를 파악하고 그것을 주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린 양이었을 때 여러분들의 이슈를 가지고 오래 대화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 분들과의 대화는 여러분들의 이슈, 여러분들의 상황이 대화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래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차례입니다. 그리스도의 복 주심을 믿고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사랑하시고 높이심을 굳게 믿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갖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관심을 지속시켜서 가까운 사람의 이슈를 알고 그 이슈를 가지고 대화하는 목자의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반응을 보십시오. 3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자기 곁에 앉히니라" (행 8:31) 이디오피아 관리의 이슈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의지의 부족이나 관심의 결여가 아니라, 인도해 줄 사람의 부재였습니다. 예루살렘까지 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성경을 읽을 만큼 그의 영적 갈망은 강하고 진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높은 지위의 관리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빌립의 관찰과 질문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양의 이슈를 중심으로 대화할 때, 상대방은 자신의 필요를 발견하고 스스로 열어 줍니다.
 그렇지만 이제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하여 빌립은 그에게 자기 메시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논하며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관리의 질문, 이사야 53장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32-33절에 기록된 이사야 53장의 구절은 그가 직접 읽고 있던 구절이었습니다. 그는 34절에서 물었습니다.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에 관한 것이냐 자기에 관한 것이냐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이냐" 


 31절을 보십시오. 에티오피아 관리가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자기 곁에 앉히니라"(31절) 처음 빌립은 달려가 수레 가에 붙었습니다. 수레 밖에서, 달리면서, 함께하는 위치였습니다. 이제 에티오피아 관리가 빌립을 수레 안으로 청하여 자기 곁에 앉혔습니다. 관계의 질적 전환입니다. 빌립은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달려오는 사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질문이 에티오피아 관리의 마음속 이슈를 중심으로 대화를 형성할 때, 관리는 빌립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자기 곁에 앉히니라'는 것은 동등한 위치, 신뢰하는 대화 상대로의 초청입니다.  상대방의 이슈를 깊이 이해하고 그 이슈를 중심으로 대화할 때, 상대방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신뢰의 관계가 이루지는 것이고 그 신뢰의 통로로 복음이 들어가 그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뢰의 통로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관계의 통로, 서로의 인격에 대한 신뢰의 통로가 열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신뢰의 통로 없는 단계에서 뭔가 전하는 것은 'Cast', 단지 던지는 것이 됩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그에게 전도하니라" (행 8:35)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입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털 깎이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입을 열지 않는 분, 낮아지심으로 그의 판결이 제거된 분. 빌립은 이 본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임을 설명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그러나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 빌립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도록 하였습니다. 에티오피아 관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말씀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하였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뛰어난 영성을 조금도 뽐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체험한 관리의 반응은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그가 스스로 말했습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행 8:36)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난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세계를 맛 본 사람이 하는 헌신의 선언이며,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입니다.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는 것은 '나는 이미 결단했다, 이 길을 가겠다'는 선언입니다. 37-38절에서 빌립은 관리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물에서 올라올 때, 주의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에티오피아 관리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지만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습니다(39절). 

 결론적으로 우리가 오늘 살펴본 빌립의 다섯 가지 절차, 찾아가기, 속도 맞추기, 상태 관찰하기, 이슈 중심 대화하기, 예수님 증언하기는 양들을 대하는 모범입니다. 이것을 전도 기술 또는 대화방법론 중의 하나로만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한 영혼을 향한 깊은 사랑이며 성령님의 인도에 대하여 세밀하게 순종한 결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깊은 사랑을 가질 때, 우리에게는 대화의 기회가 많습니다.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에게 대화하여야 할 양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무엇과 씨름하고 있는지, 어떤 이슈가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지, 관찰하며 자신을 기꺼이 소모할 의사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슈를 중심으로 대화할 인격이 되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8:26-40은 우리로 하여금 영혼을 도울 수 있는 옳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관리는 좋은 양이었습니다. 마음이 준비되었고 성경을 스스로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는 빌립으로 하여금 점진적이고 인격적인 절차로 그의 내면에 접근해 들어가 복음을 심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양도 있고 무심한 양도 있으며 좋은 양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자인 우리의 대화가 성경적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대화의 모범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이 앞으로 우리의 대화와 관계를 이어가는 인격으로 굳게 자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마음 껏 인도하시고 쓰실 수 있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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