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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마태복음 제 4 강 메시지_아산UBF_김사무엘목자

작성자서 아브라함|작성시간26.03.02|조회수62 목록 댓글 0

2026년 마태복음 제 4 강 메시지_아산UBF

 

시험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본문 / 마태복음 4:1-11

요절 / 마태복음 4:10

 

오늘 본문 속에는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보는 시험이 아닙니다. 영어로 Tempt로써 “유혹하다, 꾀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선 절대 대충 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유혹에 넘어지게끔 온갖 권모술수를 다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셨는지 배우고,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메시아가 되고자 하시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여기서 나온 “그때”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직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부 하나님과 성령님이 내려오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께서 한자리에 있는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거룩한 순간이 지나자마자 예수님은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성경에서의 광야는 물과 음식이 부족한 곳,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광야로 시험을 받으러 가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습니다. 3일만 굶어도 힘든데, 예수님은 무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을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는 가장 먼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치 뒤에 나오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게 되는 교묘한 속임수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 주변에 있던 돌을 가리키며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사십일을 쫄쫄 굶으신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하십니까? 기록되었으되~ 라고 말씀하시며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논리나 생각, 경험으로 대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 8장 3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현재로 따지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켜주시고 만나를 내려주사 굶어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운 것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당장의 배고픔만을 해결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바로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들은 40년간 한 번도 굶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지금 당장의 배고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결코 떡덩이를 만들 능력이 없으셔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 눈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 뭐 먹고 살지? 등의 이러한 근심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탄은 일부러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반격하자, 똑같이 말씀으로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뛰어내릴 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명하여 예수님을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인데 이건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번에는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6절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이 떨어질 때마다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물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시험이었습니다. 사탄도 이걸 파고든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님을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셔야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위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늘 신뢰하고 의지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고 의지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어려움이 생기지? 이러한 말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라도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갔습니다. 예수님 앞에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도 바로 이 천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하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것을 네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눈 한번 딱 감고 엎드려 경배만 하면 세상이 예수님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누가 들어도 넘어갈 수 있는 달콤한 제안입니다. 여러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인데 해볼까? 라는 마음이 금방 들게 됩니다. 그게 사탄의 전략입니다. 인류의 첫 죄는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도 선악과 한 입만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라는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내가 갖기 어려운 걸 너무나 쉽게 준다고 하니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외치시며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인간의 가장 큰 욕구라고 할 수 있는 배고픔을 가장 먼저 건드려 보았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증명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강한 권세와 힘을 주겠다고도 유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단 한번도 전지전능한 능력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시험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로 시작하셨습니다. 신적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유혹을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인간의 몸으로 사탄의 시험을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영접할 때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실 사탄의 유혹은 교묘하고 거짓이 많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너가 제일 잘 되어야지”, “성공해야지”, “더 많이 벌어야지” 이러한 말은 마치 나를 위한 듯한 말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이 유혹에 마음이 뺏기면 남과의 비교가 시작됩니다. 남과 비교하여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절망하고 우울에 빠지게 됩니다. 남의 성공에 배 아파하고, 남이 잘되면 자존심 상합니다. 어떻게든지 내가 남들보다 더 성공하고 잘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당장이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채우려고 합니다. 이들은 내 부족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을 메시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돌로 떡을 만들어 너희들의 배고픈 배를 채워주겠다고 하는 것이 사역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배나 채워주려고 오신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자 이 땅 가운데 내려오신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 명예, 돈은 지금 당장의 부족함은 해결할 수 있지만 영원히 나를 살릴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나를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비록 내가 좋은 떡, 고급진 떡은 못 먹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과 같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돌로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신 이유입니다.  

 

그 다음 사탄은 나의 인정 욕구를 파고듭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거룩한 성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서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볼 수 있는 환경입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순간 예수님께서 뛰어내려서 안전하게 보호받으심을 보여준다면 순식간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게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추락과 생존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예수님이 어느 마을에 가면 그 마을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 어서오세요~ 하면서 열렬하게 환영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만한 사건을 보여주면 메시야 사역에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사탄은 이 점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나를 주목하게 하고, 나에게 집중하도록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이런 큰 은혜를 얻었어~” 이런 식으로 말하게끔 합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젊은 목회자가 있습니다. 이 분의 영상을 보면 순식간에 몰입이 됩니다. 자신이 어떻게까지 하나님을 전하고자 했는지, 자신의 투쟁, 자신이 깨달은 거를 열정적으로 말합니다. 보는 우리의 감정을 뜨겁게 달굽니다. 가만히 듣다보면 성경 한 구절도 읽지 않은 채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을 열심히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 목회자를 따르는 것이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비단 목회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주목해주길 원하고, 나를 인정해주길 원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하면 나를 조금이라도 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사역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나만 드러나는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분명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전국청년대학생 수양회에서 폐회 메신저로 세움을 받았었습니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수양관에 도착하니 내 이름을 보고 “폐회 메신저시군요~기도할게요”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제가 이 자리에서 엄청난 메시지를 전해야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전국청년대학생 수양회가 아닙니다.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화려한 언변과 제스처로 대중들을 휘어잡았다고한들,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평생을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힘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보여주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능력과 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시험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를 너무나 쉽게 피하게 하는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권세를 버리고 이 땅 가운데 내려온 것은 나의 그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선 모욕과 수치는 기본입니다. 끝에 뼈가 달려있는 채찍에 몸이 잘려나가기도 합니다.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의 배신에 대한 정신적 고통도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에게 한 번만 절하면 처절한 고통이 있는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강하게 외치시며 자신이 지시고 갈 십자가를 피하시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힘들고 어려운 길은 되도록 피하라는 것이 삶의 지혜요,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편하고 쉽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절을 하고 세상을 얻었다면 십자가는 피할 수 있겠지만, 부활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는 메시야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피하시지 않고 온몸으로 감당하셨을 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가장 크고 존귀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부활이었습니다. 왜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까? 주와 복음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활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관악 센터로 훈련을 받으러 갈 때 저는 엄청난 손해 의식이 들었습니다. 교통비, 장막비, 오고 가는 시간을 생각할 때 이것은 누가 봐도 하지 않아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이제 박사과정으로 들어가는 학기였습니다. 논문과 연구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관악까지 굳이 가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연구실에 돈이 없어서 인건비 50만원만 받을 때가 있었는데 장막비는 너무나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를 위해 그 고통의 십자가를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죄 밖에 드린 거 없는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나는 내 시간, 돈을 아까워하며 어떻게든 안할 생각만 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온몸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영광입니다. 이를 위해 마지막까지도 예수님은 사탄에게 굴복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에 짓눌려 고통받는 우리를 위해 구원하고자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진정한 메시야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높여 찬양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인간적인 계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믿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결코 잊으시거나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크나큰 축복과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복음 역사를 감당할 때 하나님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헝가리 2세 김그레이스 자매님을 저의 동역자로 허락하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저의 지난날을 돌아볼 때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에 빠져 영원히 고통 속에 살다 죽을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사 먼저 찾아와주셨습니다. 죽어가던 저를 살리시고 진정한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축복과 은혜에 정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은혜와 무한한 감사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운 마태복음 4장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메시야로 오고자 하셨는가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무지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죄 문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크게 여기게 만듭니다. 마치 그것이 나를 죽을 것처럼 만듭니다. 나를 진짜 죽이는 것은 육체적 배고픔이 아닙니다. 영적인 결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살지 않으면 영과 육이 모두 죽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거기에서 구원이 나오게 됩니다. 더욱 더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만을 믿으며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나도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승리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승리한 메시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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