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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UBF 2021년 에베소서 제 4 강 메시지_이마태목자

작성자서 아브라함|작성시간21.02.01|조회수240 목록 댓글 0

2021년 1월 31일 주일메시지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말씀/에베소서 4:1-32

요절/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3)

 

우리는 과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에베소서 앞부분이 교리 부분이었다면 4장부터는 실제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교회 내 성도들 간의 관계성 속에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여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너희가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합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주 안에서 갇혔음을 언급합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좋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바울을 통해 에베소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맛보았고 모든 이방인들도 약속에 참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권합니다. 그러면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내에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잣대로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이방인들은 그런 유대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에게 벽을 치고 원수처럼 살아갈 그들을 예수님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서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에는 공동체를 깨뜨릴 위험요소들이 있습니다. 내가 더 높아지려는 마음,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힘써서 지키지 않을 때 하나되었던 것이 언제 다시 갈라질지 모릅니다. 내가 해온 것이 더 낫다 네가 하는 것은 이상하다 한다면 다툼이 일어나고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됨이 깨지지 않도록 힘을 써서 지켜야합니다. 그러면 하나 된 것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시 2절을 봅시다. 먼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행해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나 자세’를 말합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는 모든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또 모든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이런 자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온유’는 ‘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말과 같이 길들여진 야생동물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온유는 타고난 성품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해 갖게 된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모세가 그러합니다. 모세는 청년 시절 혈기가 많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후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겸손과 온유는 자신의 죄악된 본성과 싸우며 하나님 앞에서 훈련 받을 때 형성되는 내적인 열매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 주어지는 훈련을 잘 받으며 겸손과 온유의 열매맺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또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를 용납하라고 합니다. ‘오래 참음’은 ‘지속적으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되 꾸준하게 계속하여야 합니다. ‘용납’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믿음의 공동체에 평안이 깃들고, 그 평안이 공동체를 묶어 주는 줄이 되어 하나로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는 있지만 이것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나 자신이 사랑가운데 있어야 가능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또 받고 있는지 알아야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좋은 대로 죄짓고 심판 받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낮아져 오시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악된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구원을 얻었고 하나가 되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누구라도 오래 참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힘입어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된 이 공동체를 힘써 지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4절에서 6절은 우리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요, 성령도 한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입니다.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부르신 소망은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른 소망을 품고 서로 갈라선다면 부르신 소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분 성령께서 평안의 줄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도 이 때문이며. 만유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된 것을 힘써 지켜야합니다.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이 하나가 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 다른 존재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을 봅시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땅 아래 낮은 곳에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 위에 오르셔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물로 은혜를 주시되 각 사람에게 다른 분량으로 주셨습니다. 제가 누가, 마가, 다니엘 세 아들을 누구하나 예외없이 사랑하지만 똑같이 대하지는 않습니다. 각 사람의 분량에 맞게 대합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분량대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여기서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보내신 열 두 사도와 바울사도를 포함합니다. ‘선지자’는 미래의 일을 예언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당시 초대교회에 아가보, 빌립의 네 딸이나 안디옥교회에 유다와 실라가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나와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사도들에 의해 임명받아 파송된 순회전도자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맡아서 감독하고 다스리며 교인들을 양육하며 먹이는 사람이고, ‘교사’는 성경을 해석하며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다른 은혜의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2절을 봅시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자기 광을 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서로 다른 특성들이 잘 어우러지고 서로를 보완할 때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는데 쓰입니다. 어리고 연약한 양들이 자라나려면 한 사람만 도울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은사를 발휘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도울 때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뿌리내리고 성장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그 넓이와 깊이가 확장되어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각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각각의 특성과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또 어떤 분은 잘 이끌어 가고, 또 어떤 분은 재미있는 유머로 분위를 좋게하며, 또 어떤 분은 별 말이 없지만 조용히 기도하기를 잘합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은사를 가진 것을 비교하고 나보다 못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가야합니다. 이 때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열심히 대화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좀 수고롭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겸손히 기도할 때 우리는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야 합니까?

  13절을 봅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각자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때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됩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거역하는 우리 죄인에 대해서도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하심으로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완전히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합니다. 어린 아이는 자기중심적이고, 또 분별력이 없어 사람들의 간단한 속임수의 말에 쉽게 넘어 갑니다. 간사한 유혹에는 더욱 약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가보자면 그리로 휩쓸리고, 저기 가보자면 저리로 휩쓸립니다. 그래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쉽게 요동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같아서 세상의 풍조에 쉽게 요동하며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같이 15, 1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합니다. 특별한 때와 절기에만 몰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은연중에 그렇게 해야합니다. 그럴 때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십니다. 몸은 머리가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disorder, 병들었다 말합니다. 따라서, 사랑을 행하시고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몸된 교회도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와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를 받아 서로가 각자의 은사를 발휘하여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고 결합되어 갑니다. 각 지체가 맡은 분량대로 기능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며 사랑 안에서 더욱 튼튼히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임의 각 사람도 각자 받은 바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은사를 존중하며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자라가야겠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분량의 은사가 잘 발휘되어 우리가 하나된 그리스도의 교회로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17절에서 32절까지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해야 할 참된 것들의 실천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17절에서 24절까지는 개인생활에 대한 것이고 25절부터 32절까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야할 바입니다.   

  17절을 봅시다. 우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한 것 같이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없을 때 사람은 실체도 없고 결과도 나오지 않는 그저 그 때 그 때 마음에 드는 생각을 따라서 삽니다. 그 결과로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며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버렸습니다. 뭐가 뭔지 분간도 못하고 조언을 들어도 마음이 완악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며 스스로 죽을 길로 달려가는 상태입니다. 급기야는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였습니다. 우리의 옛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며 그 속에서 진리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며 생명의 길인지 예수님을 통해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합니다.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과거에 하던 대로 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다시 과거의 죄악된 습관으로 돌아가 생명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과거의 것을 향하고 있다면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저히 모르겠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가르침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읽고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새롭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아져야 합니다. 25절을 봅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함께 지체가 된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합니다. 내가 나에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에서 하나가 된 성도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지 말아야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분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 열받는 의로운 분입니다. 분을 내더라도 상대를 해할 정도로 하면 안됩니다. 또 계속 분을 품고 있지 말고 풀어버려야합니다. 분을 오래 품고 있을 때 마귀가 그 틈을 파고 들어 하나된 관계를 깨드리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교회에는 공공의 자산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 것인양 슬쩍하거나 자기 욕심대로 마구 사용하여서는 안됩니다. 도리어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선한 일을 해야합니다.  

  29절부터는 특별히 언어 생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말 것입니다. 더러운 말은 악의를 가지고 하는 험담과 중상 모략하는 말, 음담패설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관계를 훼손하고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우리는 오직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 은혜가 되는 말을 하여야합니다. 위로하고 권면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그런 말들을 의도적으로 해야합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습관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으로 구원의 날까지 도장이 찍혔습니다. 도장찍힌 것을 스스로 훼손함으로써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할 것입니다. ‘악독’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품어두어서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입니다. ‘노함’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급격하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분냄’은 마음에 적의가 자리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요, ‘떠드는 것’은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는 것입이다. ‘훼방하는 것’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하여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야합니다.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왜 그래야 합니까?’ 묻거나 따질 성질의 내용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되도록 하는 것이 교회에서 크리스천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힘써 행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내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부분에서 우리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고 하나된 그리스도의 교회로 쓰임받습니다. 

 

  요즘 시대가 어려우니 현상 유지만 해도 좋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교회 공동체에 현상 유지란 없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은혜를 망각하고 과거의 죄악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개성과 은사를 존중하고 살려나가되 현재에 머무르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일을 하는데 힘써야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말이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남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하고, 서로 그렇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 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되새기고 되새기고 또 되새길 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부르셨고,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거나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일을 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야합니다. 구체적으로 자기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하여 예전의 못된 습관을 버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악의로 하는 모든 비난과 비방의 말을 버리고 친절과 긍휼과 용서를 베풀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하심으로 죄인들을 감당하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고 따라갈 때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는데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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