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마태복음 제 5 강 메시지_아산UBF_이마태목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 / 마태복음 4:12-25
요절 /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우리는 앞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빛으로 오셔서 흑암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을 비추셨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이 예수님을 통해 천국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의 일을 함께 해나갈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임하여, 우리가 기쁨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세례요한을 잡아 감옥에 가둔 사람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는데, 형제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불의한 일을 행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런 헤롯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회개하기는 커녕 세례요한을 잡아다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한의 구명 운동을 벌이며 헤롯과 대립하지 않으셨습니다.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보시고, 그곳에서 그리스도로서의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딴 곳으로 갈릴리 해변의 두 지역을 가리킵니다. 스불론 지역에는 나사렛이,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납달리 지역에는 가버나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로마군 기지와 세관이 있어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하고 개방적인 도시였습니다. 유대인 뿐 아니라 여러 민족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유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 지역으로 가셨을까요?
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자기 계획이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나가셨습니다. 사도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음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그러면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갈릴리는 엄연히 이스라엘 땅에 속했음에도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렸습니다. 이 지역은 헬몬산과 갈릴리 호수가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합니다. 예전부터 북방의 강대국들이 이 땅을 탐내었고, 이 지역은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 왔습니다. 강대국 앗수르가 이곳에 쳐들어와 많은 이스라엘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고, 다른 지역 이방인들이 와서 살게하는 이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문화와 정신과 신앙과 혈통 등 많은 것들이 이방인들과 섞이게 되자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은 이런 갈릴리 지역을 더 이상 같은 동족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이방의 갈릴리’라 부르며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고 소외시켰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수백 년에 걸쳐 이런 수모를 당하며 슬픔과 상처 속에 살았습니다.
성경은 이 지역의 사람들을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곳으로 가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말씀에 따라 이 곳이 그리스도의 큰 빛을 받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흑암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을 때 사람은 끊임없는 염려와 걱정, 두려움, 죽음으로 인해 어둠 속을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로잡은 어둠을 몰아내 줄 빛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식물체들은 햇빛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태양 빛이 있어 따뜻함을 느끼고 주변을 밝히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큰 빛이 임할 때 모든 어둠의 세력이 물러나고 생명과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큰 빛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땅 갈릴리에 보내사 그 곳을 비추셨습니다. 아무런 기쁨도 소망도 없던 이 땅을 예수님으로 인해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지금 시대에 예수님의 눈과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가장 어두운 곳, 멸시받고 고통가운데 있는 이를 향하고 계십니다.
지금 시대 청년들, 우리 대학생들은 흑암가운데 있습니다. 취업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기회 잡기 어려운 환경과 치열한 경쟁은 그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큰 빛으로 지금도 임하고 계십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빛으로 생명을 얻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빛이 비추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곳,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발이 예수님의 발이 향하는 곳, 멸시받고 고통당하는 곳을 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과 같이 인생의 목마름과 막막한 어둠 속에 고통하는 한 영혼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시는 일의 실제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고통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천국이 임하게 하십니다. 천국을 얻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하십니다. 회개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아는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았아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네’ 후회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살던 것을 애통히 여기고 거기에서 돌이켜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쪽으로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고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이를 잘 듣고 보고 배워서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천국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배우고 하루 하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방향전환을 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시면서 또 무엇을 하셨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회중을 향해서 전파하실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이 복음을 전할 대상을 찾으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면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줄까 살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당시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받을 대상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이 일하는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복음을 받는 사람을 중심에 두신 사역을 하셨습니다.
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나를 따라오라, follow me!” 예수님의 부르심은 간단 명료하였고 파워풀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배워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단 따라와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깁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을 따를 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물을 던지던 갈릴리 청년 어부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흑암의 자리에 앉아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큰 빛으로 임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그물과 배, 심지어 아버지를 뒤로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당시 어부는 겨우 먹고 살기 위해 힘든 노동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정부에 등록하고 꾸준히 세금을 낼 만큼 수익이 보장된 전문직이었으며, 배와 그물을 소유했다는 것은 안정적인 자산과 기술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업과 안전장치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삶의 좌표가 완전히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들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보여주신 사역의 모습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보고 따라가야 할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회당에서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가르치셨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통해 잠자던 영혼을 깨우고 삶의 근거를 세우는 권세 있는 교육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전파하셨습니다. 여기서 전파는 '왕의 어명을 받은 전령이 포고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왕으로서 천국 복음이라는 엄중하고도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론적인 가르침이나 설교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실제 문제 속에 들어가셔서 그 문제와 함께 하시고 해결해 보이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곳에 임했다는 강력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소문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 땅인 수리아와 헬라 문화권인 데가볼리까지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불치병자들이 나음을 얻자, 소망을 잃고 어둠 속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엄중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을 내왔습니다. 학기 초에 피싱하여 새로운 학생을 만나고 연락을 주고 받으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일대일 말씀공부의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지 살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해도 잘 따라와 말씀을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을 맛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학생들은 모르는 사람의 연락을 받는 것도 자기에게 알아듣기도 힘든 성경말씀을 들이대며 가르쳐주겠다 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빛이 비추어져 생명을 얻기도 전에 관계를 차단하고 떠나가버립니다.
이를 누구의 문제로 봐야할까요? 양들이 이상하고 문제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서 먹히지도 않고 성경적이도 않는 방식을 계속 고집하는 목자의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배웁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전인격적이고 입체적이었습니다. 성경을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실질적인 치유로 이어졌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얻는 것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양들에게 성경 지식은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들이 처한 장래 문제에 대한 두려움, 취업과 진로 앞에서 겪는 실질적인 떨림을 깊이 이해하고 싸매주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아야합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더 인내해야한다"는 말로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나 돌아보아야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그 말씀이 그들의 삶을 실제로 고치고 성장시키는 치유가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가르침과 고침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이 굴러갈 때, 복음은 비로소 캠퍼스에 널리 전파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실제 문제에서 도움을 주는 일을 함께 해가야합니다.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 영혼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살피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합니다. 가희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너무 고민이 되어서 몰래 눈물흘리는 일이 많았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남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도 괜찮을지 과연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앞날을 맡긴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제가 목자로 살면서 한 사람이 생명얻도록 돕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한 영혼의 어려움과 목마름에 귀기울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실제 그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예수님께 나아가 매달려 기도하며 방법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 제가 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살 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알지 못하고 실제 문제를 도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영역까지 모두 내려드리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나 자신이 실제에서 예수님의 도우심을 맛보고 체험해나가야합니다. 사라 목자가 대학원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막막할 때가 많지만 예수님을 의지하여 조금씩 해결해나가면서 믿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대학원 과정을 하고 있는 가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로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해보자고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실제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예수님께 들고 나아가 해결함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먼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합니다. 이를 통해 다른 한 영혼을 이해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학업과 취업과 결혼과 물질과 자녀와 건강문제 등 모든 문제들을 예수님께로 들고 나아가 주시는 말씀에 따라 해결하는 실제적인 믿음의 체험들을 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양들의 실제문제를 돕고 천국복음을 전파함으로 보내주신 캠퍼스에서 예수님의 큰 빛을 드러내는 데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갈릴리로 가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 갈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함께하시며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사람들의 실제 문제를 고치시는 사역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사역 방식을 따라갈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생명이 살아나는 일에 쓰임받을 것을 믿습니다.. 이번 봄학기 캠퍼스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큰 빛을 비추는 일에 잘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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