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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목요일(일치 주간)(1/18)

작성자국화|작성시간24.01.18|조회수32 목록 댓글 0



연중 제2주간 목요일(일치 주간)(1/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제1독서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6-9; 19,1-7 그 무렵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수많은 사람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더러운 영들의 고백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 있게 하여 주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요?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처음 고백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모두 지켜본 백인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15,39).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십자가 위에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진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기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드러나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더러운 영들의 고백에는 십자가가 빠져 있습니다. 기적만 있을 뿐입니다. 악은 이렇게 우리가 십자가로 향하지 않게 만듭니다. 십자가 없이 기적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게 만듭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바라게 하고,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조금만 힘들면 언제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좋아하고 편한 방법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셔야 한다.’는 교만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합니다. 고통 앞에서,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진짜와 가짜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향한 요나탄의 우정이 진짜라는 것도 죽을 위협 앞에서 드러나게 된 것처럼(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진짜임을 십자가 위에서 드러내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주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를 위한 진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믿음입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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