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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중심의 믿음과 삶 “걱정하지 마라”

작성자국화|작성시간26.06.20|조회수16 목록 댓글 0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입니다. 다른 말마디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무서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불안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정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도대체 주님 대신 

넣을 말마디가 있겠는지요? 주님이 아니곤 무슨 말마디를 넣어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삼 사람이 물음이라면 답은 주님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요 끝없는 표류와 방황입니다. 

여름철 피어나는 야생화 들꽃도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상징합니다. 

세편의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아침 이슬 머금은
연분홍 메꽃들, 연노랑 달맞이꽃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해
저리도 청초한가보다”<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해;2008.8. >

“해를 향해, 해를 닮아
늘 크고 환한 둥근 얼굴, 둥근 마음
해바라기
주님 닮아 주님 향해
늘 크고 환한 둥근 얼굴, 둥근 마음
주바라기”<해바라기;2008, 8. >

하느님을 찾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 정서입니다. 오래전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란 

자작시에 여전히 공감합니다.

“방에 있는
TV, 그림, 사진, 대부분이 군더더기
쓸데없는 짐

이보다 더 좋은
임 만드신 창문 밖 하늘 풍경
살아 있는 그림

늘 봐도 새롭고 좋네
좋은 창 지닌 방 하나만 있어도
부러울 것 없겠네”<2005.6. >

그래서 늘 주님은 우리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임을 강조하십니다. 결코 하느님과 재물이 

양립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그래서 저는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해 우선순위를 분명히 합니다. 

<1.하느님 중심의 믿음, 2.건강, 3.돈> 이 우선순위가 절대로 바뀌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오늘 역대기 하권의 어리석고 배은망덕한 요아스 임금이 좋은 반면교사가 됩니다.

충신인 여호야다 사제가 죽자 측근들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을 저버리고 바알 우상을 섬겼고 

즈카르야를 살해함으로 대죄를 짓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니 <하느님을 떠난> 자업자득 

스스로 자초한 심판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어버릴 때 영육의 병과 더불어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됨을 봅니다.

오늘날 역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삶의 중심 자리에 세속의 무수한 자기 파괴의 우상들을 

모시고 살아가는지요! 그래서 죄도 많고 싸움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열화와 같은 강론이 충격적 감동을 줍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걱정하지 마라>는 

주제로 요약됩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이라 반박이 불가능합니다. 

탄로되는 바 우리의 부끄럽고 초라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말씀하신 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신 다음 우리의 약한 믿음을 

질타하며 분발을 촉구합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더 이상 무슨 반문이 필요하겠는지요? 예수님이야 말로 믿음의 대가이자 달인임을, 우리는 

영원한 초보자 믿음 수준임을 깨닫습니다. 평생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평생화두와 같은 금과옥조의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하느님 중심의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입니다. 정말 살 줄 아는 

분입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그러니 날마다 선물로 

주어지는 오늘 하루 지금 여기를 살아야지 어제의 아픈 상처를 안고 또 내일의 걱정까지 끌어다 

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2코린8,9).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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