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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 앞에서 본질적 깊이의 참 삶”

작성자국화|작성시간26.06.06|조회수22 목록 댓글 0



“내 입은 님의 찬미로 가득 차 있고
진종일 당신께 영광을 드리나이다.”(시편71,8)

저는 생래적으로 자연주의자, 생태주의자, 신비가, 관상가, 영성가, 시인쪽에 속한다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하나 요구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으며, <있는 그대로>에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하여 제 집무실 이름도 자칭 지족암知足庵또는 천장암天藏庵이라 부릅니다.

요즘 하늘 높이 치솟는 무수한 아파트 숲 앞에 설 때 마다, 치우고 치워도 곧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들을 볼 때 마다 절망합니다. 어렸을 때 50년대 쓰레기 하나 없던 무공해의 시골 자연을 그리게 됩니다. 하느님은 점차 잊혀지고 자연은 망가져가며, 삶은 바빠지고 복잡해지며, 불안과 두려움에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흡사 모래위의 집처럼 사상누각의 AI 현대 문명처럼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복음의 부정적 율법학자들과 헌금함에 큰돈을 넣는 부자, 그리고 가진 것 전부를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예수님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늘 우리의 자리와 삶을 묻게 됩니다. 인간성은 변하지 않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묻게 되는 궁극적 질문“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피상적 외적 육적 속물적 껍데기 삶을 살아가는 부정적 바리사이들도, 부자도 아닌 <가난한 과부>입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가진 것 전부를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에게서 자신을 발견한 듯합니다. 가난한 과부가 상징하는 바, 평생 자기를 비워 하느님과 인간을 섬긴 예수님입니다. 그 누구도 가난한 과부를 주목하지 않지만 동병상련 주님은 과부를 주목합니다. 이어 과부의 예를 들면서 제자들을 교육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하느님의 거울>같은 가난한 과부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서 탐욕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참 삶을 살았던 가난한 과부입니다. 정말 살 줄 아는 무욕의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진정 부자요 자유인이요 행복한 사람인가 묻게 됩니다.

부유해도 돈에, 소유에 노예가 되어, 중독되어 불행하게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텅 빈 가난한 마음에 주님을 모심으로 누구보다 내적으로 부유하고 당당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한 과부입니다. 주님 앞에서 본질적 깊이의 참 삶을 살았던 익명의 관상가이자 신비가에 속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문득 오래전 써놨던 자작시 <민들레꽃>을 연상케 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이 시를 써놓고 받은 위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대로 이 민들레꽃은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지상에서 가난하나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하늘나라의 삶을 살았던, 주님 앞에서 본질적 깊이의 참 삶을 살았던 성인들을 상징합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했던 가난한 과부요 진짜 성인들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았듯, 오늘 독서의 바오로가 그대로 주님을 닮았습니다. 두 분 다 일일일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종말론적 삶을 살았던 참사람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티모데오 제자에게 주신 당부도 훌륭하고, 마지막 유언처럼 들리는 말씀도 충격적 감동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바오로의 말씀 안에 그의 평생 삶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티모데오 제자에게 주신 주님의 간곡한 당부에 이은 멋지고 아름다운 유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도 주실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분발케하는 말씀입니다. 인생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인생 달리기 경주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죽어야 끝나는 목적지까지 달리는 경주입니다.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내 페이스대로 완주하면 누구나 1등이요 구원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주님 앞에서 본질적 깊이의 참 삶을, 내적으로 부요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영적승리의 참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나만은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날로 더욱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71,14).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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