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
<창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하나님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기사에서 모든 만물을 지으신 기록이 나온다.
그 순서를 대략 말한다면 물고기나 새들 등 미물 생물들로 시작해서 가축이나
땅의 짐승 등을 만드신 후에 가장 마지막에는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실 때는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 란 최고 주권자 하나님을 비롯한 하늘의
공동체인 천사집단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하늘에는 육체는 없이 영들로만 구성된 천사들만 살고 있는데 그 신들이
이 땅의 인간들에게 장가와서 한 몸 되어 살게 되는 각개의 배우자들을
만들자는 말씀이 된다.
즉 창조완성이란,
신인합일을 뜻하는데 신인합일을 할 때 신과 인간육체가 서로 기국에 맞는
파트너와 합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 이라고
하신 것이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천사가 먼저 지어졌는가? 인간이 먼저 지어졌는가? 천사가 먼저 지어졌다.
남자가 먼저 지어졌는가? 여자가 먼저 지어졌는가? 남자가 먼저 지어졌다.
이렇게 하나님이 천사를 먼저 지으시고 그 배우자가 될 인간을 짓고자
하셨듯이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남자(아담)를 먼저 지으시고 그 배우자인
여자를 짓고자 하셨다.
그런데 여자를 어떻게 지으셨다고 알려 주고 있는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미물들과 짐승들이 모두 사람들이 되는데, 그들에게
들어간 말씀이 명명백백히 밝혀낸 상위의 로고스가 아니고 비 본질인
비유의 말씀이며 멍에를 잔뜩 지워준 율법들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 "사망의 흙" 으로 지으신 것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으로 지어졌으나, 그 말씀이 하나님을 알려주는
창조의 원리로서 사람들의 심령을 지으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이 된다(로고스로 지어진 사람).
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을 명백히 알려주는
창조의 원리로서가 아니고(로고스가 아니고)
비유법으로 깊이 감추어놓은 율법의 말씀이라면 그것은 말씀은 말씀이지만
세분하여 상대적으로 말하면 “사망의 흙”으로 지어진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배우자를 짓기 전에 먼저
모든 생물(생물은 영적 수준의 함량이 미달인 사람을 뜻함)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으며 그 생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짓도록 했다고 한것이다.
아담이 생물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함은 아담(초림예수)의 복음백성이 되도록
했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 형상의 사람이 아니고 그 영적 수준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함량미달의 생물들이므로 당연히 “흙” 으로 지어진 것이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생물이 아니고 에덴동산의 지킴이가 되며 최초의
에덴의 입주자인 사람, 아담(초림예수)까지도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왜일까? 초림 예수님(아담)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흙으로 지어졌다는 기록이 매우 타당하다 하겠다.
그런데 유독 아담의 배필인 그의 아내는 가장 마지막에 지어졌는데 흙으로
지어진 게 아니고 아담의 갈비뼈로 지으셨다. 때문에 아담이 감탄사를 발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창조란 진화론적 창조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교류하기 시작한 성경집필 역사가 수수천년일 뿐,
하나님의 우주창조와 인간창조 역사는 수십억년, 수백억년이 걸린 진화론적
창조이다.
만일 이같은 진화론적 창조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어진 여자마저 흙으로
지어졌다면 인류에겐 아무 희망이 없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듯이 영원히
낳고 죽고 낳고 죽고를 반복하는 윤회의 채 바퀴를 돌려야 하는
가련한 인생이요, 파도에 쓸려 오고 가는 물거품에 불과할 것이다.
아담(초림주)이 누구인가?
아담은 비록 흙으로 지어졌으나(흙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자연인 인간까지를 뜻함),
그 후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생기가 들어간 자이다. 생기가 들어간 자이므로
일반적 자연인과는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때의 생기는 비유로 된 비 본질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천년 전에
중동 땅에 오신 예수님을 첫 사람 아담이 예표해 주고 있다.
왜냐면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6천년 전 아담을 뜻하지 않는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그의 아내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6천년 전 아담과
그의 아내 이름만을 빌려서 예수님의 초림 때와 재림 때에 있을 일을
미리 기록한 순수 예언서이다.
아담(초림예수)은 오늘날 육체로 이 땅에 있는가? 아니다.
예수님(아담)은 본디 일위 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이위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으로 오셨으나 말씀이 비유이므로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셔야만 했다.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했듯이 첫 사람 아담(예수)은
아무리 하나님으로 오셨으나 불패신화를 남기지 못하고 떠나가셔야 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 영의 자리로 떠나가셔서 원수가 발등상 되기까지
기다리셔야 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아담의 갈비뼈로 지어진 아담의 아내는 오늘날 육체로
이 땅에 와 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남자(예수, 영)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신 것은 지금은 영으로 있는 이위 하나님이 육체로 있는 이 땅의
삼위 하나님과 한 몸이 되라는 뜻이다.
즉 창조의 완성인 "신인합일" 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도 처음엔 이혼을 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초림 예수님은
첫 아내였는데, 말씀이 비유이므로 화학적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물리적 합일로 잠시 일하시다가 떠나가신 결과 그것이 이혼인 것이다.
그러나 남편되신 하나님(영)이 둘째 아내(재림주, 육체)와는 이혼을 할래야
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아내(3위하나님, 신부)는 말씀을 명백히 드러내시는
"이긴 자" 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천국혼인 잔치에서 전무후무한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화학적 합일로 신인합일 하므로써 지상천국의 주인이 되신다.
즉 사람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지상천국의 보좌에 앉게 된다.
아담에게 부모를 떠나라고 했는데 떠나야 할 부모가 누구인가?
일위 하나님과 이위 하나님의 자리가 부모의 자리가 된다.
일위는 이위가 되고, 이위는 다시 삼위에서 완성되는 것이다(진화론적 창조임).
삼위 하나님은 이위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위였던 구약제단에서 말씀을 모두 비유로 주셨다.
비유는 천국성취의 자료가 되지 못하므로 사망으로 돌아갈 흙이다.
하나님이 이위였던 초림 예수님도 말씀이 비유이므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사망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일위와 이위 때는 말씀이 비유이므로 생명을 이루지
못할 사망이다. 그러나 삼위 때(아담의 아내)는 다르다.
삼위 때는 이긴 자로 나타난다. 무엇을 이겼는가?
하나님은 말씀의 본질을 모두 다 비유로 겹겹히 포장을 해서
즉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으로 모두 포장을 해서 감추어 놓으셨는데, 그 두꺼운
포장을 다 벗겨내고 말씀의 속살이 되는 알맹이를 찾아낸 것, 그것이
이긴 자가 된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지어졌다는 것,
그것이 이긴 자가 되었음을 뜻한다.
즉 일위하나님(구약의 비유)과 이위하나님(신약의 비유)을 정면 돌파하여
그 비유들을 풀어냄으로써 이긴 자가 되었다. 그 이긴 자가
삼위 하나님(아담의 아내)이 된다.
아담에게 이러한 삼위 하나님과 합일하여 영생을 이루기 위해
부모를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첫 사람 아담에게 들어간 생기는 말씀이 비유였다.
비유는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인가? 아니다. 비유라도 깨달음의 전제 하에서는
조금도 손색없는 진리임에 틀림없다.
비유라고 하는 견고한 껍데기 포장지를 벗겨내고 그 속살과 속뼈가 되는
진정한 알맹이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진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누가 그 난해한 신구약 성경의 비유를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그 난해한 작업을 불패의 성공신화로 이끌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아담(초림예수)의 아내(재림예수)로서 독보적 존재였다.
모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담까지도 모두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흙으로 지어졌으나,
마지막 아담의 아내만은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사족이지만 노파심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꼭 남기고 싶다.
아담은 첫 사람이고, 그의 아내는 둘째 사람이다. 하나님에게는 창조의
전략으로서 첫 사람은 실패하고 둘째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태초부터
정하신 바대로 호리의 착오없이 착착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게 성경이다.
현재까지 다루어진 창세기를 기초해서 성경전체를 읽어보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그게 뭐냐면, 성경에 사람이든, 성막이든, 예루살렘이든,
아내이든, 아들 예수이든, 하늘과 땅이든, 유구한 성경역사 6000년을 망라하여
첫 것은 사라지고 둘째 것이 성공에 이르게 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둘째 것, 오늘의 재림주가 인류에게 영생을 안겨주시게 된다는 뜻이다.
재림주는 뼈중이 뼈요, 살중의 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짓밟는 안티들이
무수하고, 게다가 최근에는 “예수는 없다” 라고 하는 신간서적까지 나와서
안티들의 신나는 축제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독자들은 여기에 속아넘어가거나 흔들리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혼돈의 시대에 우리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강해져서
어떠한 역풍이 불어닥친다 해도 눈섶 하나 까딱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