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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을 걷다(소옥섭)

작성자오드리|작성시간26.06.19|조회수28 목록 댓글 0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집에 오니 오후 3시, 하루를 마무리 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날도 그다지 덥지 않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양우산 하나를 챙겨들고 은파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혼자 걷는 길이 마냥 즐거워 노래교실에서 최근에 배운 노래를 나도모르게 흥얼거렸다.

 

그런데 공원 중간쯤 갔을 때였다.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분도 지나지 않아 비는 거의 폭풍우처럼 변했다.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거세게 쏟아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둥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나 혼자 무인도에 남겨진 것 같았다. 돌아가야 했다.

비와 바람, 천둥소리를 뚫고 걷는 길은 올 때보다 몇배는 길게 느껴졌다.

'오늘 과연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조금씩 무서워졌다.

 

그런데 문득 한 손을 우산 밖으로 내밀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손바닥으로 받아 보았다.

이런 느낌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생각보다 훨씬 시원했고,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 순간부터 나는 비를 피하는 대신 비를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멀리 새로 생긴 땅콩빵 가게의 불빛이 보였다.

오늘따라 그 불빛은 유난히 밝고 따뜻했다.

"아,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

그순간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자 현관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운동화도 양말도 바지도 모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축축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비를 맞은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작은 행복 하나를 주워 온 것 같았다.

 

옷은 흠뻑 젖었지만 마음은 뽀송뽀송했다.

비는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순간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다음에도 비 오는 날 산책을 나가 볼까.

물론 나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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