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어느 여름날 숲속의 오후 / 최성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 그리고 커피 한잔, 나른해지는 오후!
오랜만에 ‘하하 호호’ 즐거운 발걸음으로 월명산에 오른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계절 월명산의 자태에 무엇인가 모를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차장을 끼고 여러 방향으로 산에 들어서는 입구들이 보인다. 수시탑 가는 길, 설림산 길, 편백숲 가는 길, 호수변을 끼고 도는 길 등등. 어디든 산뜻하면서도 웅장해 보이는 녹색의 반짝이는 물결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가 손짓하고 있다. 그들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듯하다.
마냥 즐거운 우리는 반가이 맞이하는 수변을 끼고 새로 난 목조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숲속에 운치 있게 들어선 휴식공간에 다다른다. 작은 테이블 그리고 기다란 의자가 멋진 숲속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숲을 걷는 사람들이 휴식도 취하고 주말이면 공연장으로 이용되는 곳인 것 같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달음에 다가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푸른 호수를 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니 어느새 우리들의 얼굴에도 호수의 푸른 물이 들어있다. 한없는 평화로움 속에 갑자기 누군가가 조용히 흔한 노래를 흥얼거리자 자동 반사처럼 모두가 함께 화음을 맞춰 어느 새 합창을 하고 있다.
산책을 나온 사람 몇몇이 잠시 멈춰 우리의 공연 아닌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상큼한 바람 불어와 수줍게 볼을 간지럽히고 앞에 펼쳐진 호수는 바람결의 장단에 맞추어 조용하고 느린 곡을 끊임없이 연주하고 있다.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찰랑거리는 나뭇잎 사이에 예쁜 새 한 마리 몸을 숨기고 있다가 우리를 향해 수줍은 인사를 한다. 갑자기 어디선가 그의 친구들 한 떼 날아와 함께 화음을 더하고.... 잠깐 벤치에 몸을 기대니 나뭇잎 사이사이 가느다랗게 얼굴 내미는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 나에게 닿으며 끝없는 항해를 재촉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숲속이 연출하는 공연에 함께하였다. 정다운 대화를 하고, 애송시를 낭송하고, 다리 위를 돌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떠오르는 시상을 주체할 수 없어 휴대폰에 조용히 메모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좀 더 숲속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의 잔잔한과 시원함,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길이 난 숲을 걸어 들어갈수록 또 다른 세상이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호수를 끼고 도는 길엔 이제 막 제철을 맞은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그 진한 향기와 더불어..... 몇 달이 지나면 튼실한 열매를 우리에게 선물하리라. 길옆으로 여름을 수놓는 꽃들이 해죽해죽 맑은 웃음을 던진다. 호수는 여전히 치마폭 잔주름 가는 물결을 끝없이 밀어내고 있다. 숲쪽을 바라보니 각종 나무들이 그 푸르름을 자랑하며 가끔씩 다녀가는 바람결에 온몸에 리듬을 타고 있다. 한없이 조잘대며 걷다가 숲속 그네에 몸을 싣고 출렁거리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다시 숲으로 향한 길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여름날의 오후를 즐기며 걷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한없이 경쾌하다. 우리도 그들과 하나 되어 잔잔한 숲의 부름에 여름을 맡긴다.
이곳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떤 소리도 정겹고 훈훈하다. 태초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러했을까? 우리의 푸른 왕국! 밖은 29도를 오르내리는 제법 무더운 기온이라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울창한 나무와 숲, 물과 바람,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여름날의 오후는 진정 신선놀음이 아닐까?
어느 날 마음의 소리 따라 들어온 숲길! 그곳에는 더운 몸 포근하게 식혀주는 쉼터가 있고 눈부신 햇살이 있고 그리고 잔잔한 물이 흐르고 신선한 바람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 흠뻑 젖은 한없이 평화로운 내가 있다.
정다운 숲의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초록의 꿈을 키운다.
아! 행복한 숲속의 오후!
여름을 부른다 / 최 성 순
새벽 동틀 무렵
연둣빛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나뭇가지에 부지런한 햇살이 내린다
맑은 빛 아래 고운 옷은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햇살이 실어 온 바람일까
어디선가 속삭이듯 날아와
살포시 볼을 간지럽히는 숨결에
푸른 잎사귀들은
살랑살랑 춤을 추고
나뭇가지 푸른 옷을 우산 삼아
뾰족한 입을 쭉 내밀고
여유롭게 종종대던 까치가
긴 꼬리를 내리고
우아한 자태 뽐내다
‘푸드득’나뭇가지에 오르면
어디선가 바람 끝에 묻어온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온 세상에 리듬을 더하니
잠자던 풀잎에 꽃망울 맺히고
따스한 기운에 답하듯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무성한 때를 기다리던 숲이
드디어 여름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