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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6-13 / 원죄의 시작과 그 본질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2.03.17|조회수64 목록 댓글 0

■2022년3월 17일(목)■

 

(창세기 3장)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묵상/창 1:6-13)

 

◆ 선악과를 따먹음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말이 그럴싸했다. 선악과는 정말 먹음직, 보암직했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논리가 더 그럴싸해 보일 때가 있다. 이때가 위험할 때다.

 

사이비, 이단의 종교들도 온통 그러한 그럴싸한 거짓 논리로 가득 차 있다. 어리석은 자가 분별하는 방법은 그 논리가 아니라, 그 결론이다. 그 결론이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단이다.

 

하와는 따먹었다. 그리고 아담에게 주었다. 아담은 별 말 없이 그것을 먹었다. 인류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금지된 음식을 먹은 행위 정도가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히 독버섯이 위험하니 먹지 말라는 정도의 권고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왕의 명령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먹음으로써 인간은 치명적인 죄를 저질렀다.

곧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마귀의 말을 더 믿은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행위이며 신의를 저버린 것이며, 불충의 범죄다.

 

 

◆ 원죄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를 우리는 원죄(原罪, original sin)라고 한다.

원죄는 결코 별것 아닌 것이 아니다.

 

남편 있는 여자가 단순히 다른 남자와 겨우 하루 잤을 뿐인데 뭘 그렇게 문제 삼는가 하고 말할 수 있는가? 종종 인간은 그 사건 하나로 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무너지지 않는가?

 

원죄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배신이며, 불신이고 불충이다.

원죄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단순히 범죄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이상한 변화를 몰고 왔다.

 

인간의 눈이 밝아졌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언뜻 바람직하게 보인다. 어두웠던 눈이 밝아졌다는 데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 말은 육체의 눈이 밝아졌다는 말이 아니다. 선악과 이전에도 아담의 눈은 독수리의 눈보다 더 밝았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눈'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의역하자면 판단의 눈이 떠진 것이다.

 

그 증거가 선악과를 먹자 그들은 자기들이 벗은 것을 알고 부끄럽다고 여겨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해서 입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질문에 답해야 한다.

벗은 것은 원래 부끄러운 것인데 못 깨달았다가 선악과를 먹고 깨달은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스스로 부끄럽다고 판단한 것인가?

 

만일 전자라면 부끄러운 것을 하나님께서 숨긴 셈이 된다. 그럴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하다. 모두 좋았더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후자다. 아담이 벗은 것이 스스로 부끄럽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물어보셨다.

"누가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11)

아무도 아담에게 벗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한 자가 없다. 스스로 판단한 것일 뿐이다. 아담에게 전에 없었던 새로운 속성이 생겼다. 이 속성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것은 선과 악의 판단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런 능력은 언뜻 좋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준이 누구인가이다.

 

본래 하나님께서 선과 악의 기준이시다. 하나님께서 선이시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 모두 악이다.

그런데 이제 인간은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곧 자기 자신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된 것이다. 엄청난 교만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자기 나름의 고유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 판단하는 아주 건방지고도 못된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티끌보다 못한 인간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나님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역겨운 일인가!

 

◆ 원죄의 후유증

 

선악과를 따먹자 인간은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8)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죄책감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를 아내의 책임으로 돌렸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

세상에! 아내를 가리켜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던 남자가 이제는 자기가 결정한 범죄를 아내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심지어 이런 아내를 주신 하나님 탓임을 암시한다.  하와도 마찬가지다.

모든 관계가 깨지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뱀의 말이 제법 맞은 구석이 있다. 다만 정말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행세를 하는 가짜가 된 것이고 하나님을 사칭하는 사기꾼이 되었을 뿐이다. 마귀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준 적이 없다.  이제 인간들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모두 자신의 영광을 추구한다. 자랑하기 좋아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인간은 자랑거리와 자아도취가 사라지는 순간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이후로 인류 역사는 싸움의 역사다.

모두 자기가 하나님이니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선악의 기준이 자신이니 자기를 거스르는 것이 모두 악이고 원수다.

부부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교회에서도 싸우고, 나라끼리도 싸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 그래서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자랑하는 것, 이것이 원죄의 속성이다. .

도둑질이나 살인보다 교만과 옹고집이 더 원죄에 가깝다.  하나님은 도둑이나 간음한 사람보다 고집 센 교만한 자를 더 역겨워하신다. 도둑이나 살인자는 자신들이 죄를 지었음을 알지만, 고집 센 교만한 자는  끝까지 자신만이 옳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완고한 것은 곧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 우상숭배다(삼상 15:23).

 

주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제게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제 옛사람의 죄성에서 자유케 해주십시오.

진리의 말씀 외에는 어떤 고집도 부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그 겸손을 평생 본받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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