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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18-29 / 노아의 아들 함의 문제와 셈과 야벳의 사려깊은 행위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2.04.01|조회수397 목록 댓글 0

■2022년4월 1일(금)■

 

(창세기 9장)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묵상/창 9:18-29)

 

◆ 함의 잘못과 셈과 야벳의 사려깊은 행위

 

(20-21)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의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져나갔다. 오늘 본문은 이들이 퍼져나가기 전에 인류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칠 어떤 사건을 다루고 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해서 포도를 얻었다. 이것이 홍수 직후 첫 농사였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수확한 포도로 포도주를 담갔고,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크게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누웠다. 아무리 세상 천지에 자기 가족 외에는 없으며 눈치볼 자가 없다고 해도,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상 의인 세 명을 손꼽아서 열거하신 적이 있는데, 그 세 명은 노아, 다니엘, 욥이었다(겔 14:14). 이들은 능히 한 나라를 구할 만한 의인들이다.

 

그런데 그토록 대단했던 노아가 이렇게 포도주에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충격이다.

 

가령 교회의 신실한 장로로 인정받는 형제가 음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하자. 빅뉴스다.  교회 형제들은 충격받고, 배신감마저 느낄 것이다.   

그는 위선자였던가? 우리는 그동안 속아왔던가?

 

그러나 노아를 기억하라.

가끔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흐트러진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지나치게 충격받거나 그것으로 그 사람을 합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면  심각한 문제겠지만, 한 번은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자.   

 

노아는 자식들에게 빈틈없고 완벽해보이는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의 이런 객기는 아들 함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놀랬어도 자기 선에서 이것을 해결했어야 했다. 함의 나이가 무려 100살이 넘었다. 적어도 그정도 판단할 나이는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함은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그는 즉시 이 충격적인 사건을 형제들에게 알렸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미쳤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훨씬 성숙하게 대처했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아버지의 나신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얼굴을 돌이켜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깨서도 부끄럽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호기심에 슬쩍 얼굴을 돌려보는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다.  

 

셈과 야벳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우리도 살다보면 안보는 것이 나을 일을 목격할 때가 있다. 종종 그런 일은 그냥 내 선에서 덮거나 못본체 하고 지나치는 것이 그와 공동체를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꼭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오히려 이런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것을 떠벌리는 사람에게 오히려 경고하고, 셈과 야벳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노아의 축복과 저주

 

노아는 술이 깨었을 때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아는 함을 저주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함이라고 말하지 않고 '가나안'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무척 특이하다. 가나안은 함의 자식이다. 노아는 함이 아니라 함의 자식을 저주했다. 함의 잘못이 그 후손에게 미치게 되었다.

 

우리는 노아가 그런 것을 가지고 아들과 그 후손을 저주한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아의 저주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어진다. 왜냐하면 노아의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출애굽 후에 가나안 전쟁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쫓겨나고 그들의 종이 되었다.

 

노아의 아들 함의 행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의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불신앙과 경박스러운 삶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노아의 축복을 받는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셈의 하나님이란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과연 아브라함과 그 후손은 모두 셈의 후손이다. 예수님도 셈의 후손이다. 야벳은 셈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므로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된 셈이다.

 

한때는 이 구절을 통해서 함의 후손인 흑인이 백인의 노예가 된 것이 노아의 예언 탓이며 이를 당연시 했다. 그러나 옳지  않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러한 인종차별은 모두 폐기되었다(골 3:11).

 

그후로 노아는 350년을 더 살았는데, 노아가 사망할 당시에 아브라함은 58세나 되었다.

 

주님,

함처럼 어리석게 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셈과 야벳처럼 지혜와 사려깊은 마음을 주십시오.

호기심에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게 하시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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