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4월 6일(수)■
(창세기 12장)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묵상/창 12:1-9)
◆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1장 마지막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죽은 것으로 끝나고, 12장이 시작되니까 읽는 사람들은 마치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람이 움직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계산해보면, 아브람이 75세가 되던 해(창 12:4), 즉 데라의 나이가 145세이며, 데라가 죽기 60년 전이다. 홍수 후 367년이 지난 시점이다.
아비가 살아있기에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아브람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인데, 왜 고향을 떠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아브람이 다시 고향 방향(동쪽)으로 향하지 말고 가나안 방향(서쪽)으로 갈 것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본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5) 라고 나와 있다. 마치 아브람이 갈 목적지를 뚜렷이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이 두 구절은 서로 모순인가? 아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의 세겜까지는 직선거리로 대략 800km 정도 된다.
이 여행이 단순해 보이지만 당시를 상상해보면 결코 아니다.
아브람이 지도도 없고, 지명도 없던 시절에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무작정 가는 것은 무척 불안하고 두려울 만하다. 수많은 양 떼와 여러 사람을 이끌고 이동하는 피곤한 여행인데, 중간 중간에 넉넉한 평원과 좋은 환경이 나타나면 그대로 안착하고 싶을 적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오로지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이동해야 했다. 며칠이 걸릴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기약 없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지금이야 아메리카가 어디에 있고,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콜럼버스가 떠날 때는 그저 막막하고 불안한 여행이었다. 콜럼버스가 배를 타고 무작정 서쪽으로 향해서 결국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당시로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아브람이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것은 바로 그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했다.
우리는 손해 볼 것 같으면 불순종하고, 용기가 안 생겨서 불순종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불순종하지만,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다.
참고로 아브람이 떠난 하란에는 여전히 그의 동생 나홀이 살고 있었는데, 65년 후에 아브람은 자기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자기 종을 하란에 보낸다. 그리고 종은 아브람의 동생 나홀의 손녀 리브가를 데려온다. 그리고 그 리브가는 자기 아들 야곱을 보호하고자 하란에 도피시킨다.
◆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너는 복이 될지라' - 단순히 복을 주시겠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복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 약속은 엄청나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이 의미는 그다음 구절에 설명되어 있지만, 아브라함이 복덩이가 되어서 그를 축복하는 자는 모두 복을 받게 되며, 그를 대적하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게 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영원히 한편이 되시겠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을 대접하면 그 집이 복을 받고, 아브라함과 싸웠다가는 패가망신한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복된 곳이 되며, 아브라함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복 받는 일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가깝다는 이유로 소돔에서 건짐을 받았다(창 19:29). 이런 복을 받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3).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을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런 복을 물려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 3:14)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복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히 경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