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4월 13일(수)■
(창세기 15장)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묵상/창 15:7-21)
◆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족속으로부터 분리시키시고, 우상숭배에 찌든 아비의 집으로 부터 독립시키셨다(수 24:2).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물하셨다.
이것은 마치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소유케 하시려고 이 세상에서 부르시고 교회로 모이게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이라고 하셨는데, 아브람이 받은 가장 큰 상은 가나안 땅도 아니고, 거대한 자손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신바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상은 건강이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된 것이 최고의 상이다(갈 4:9). 모든 복은 여기에서 나온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표징으로 보여주실 것을 호소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해서 이런 호소를 했다기보다는 더 확고한 믿음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 요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더 확고한 믿음 가운데 살기 위해 이런 호소를 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의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게 하셨다. 다만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쪼개지 않도록 하셨는데,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후에 율법에서는 완전히 쪼개지 말고 약간만 쪼개도록 하셨다(레 1:17).
희생물을 쪼개서 양쪽으로 놓는 이 행위는 의미가 깊다.
일단 언약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베리트'는 '쪼개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바라(bara)'와 '선택하다'라는 의미 '바라(barah)'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즉 언약이란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을 요구한다. 그 사이를 지나감은 언약을 하는 것으로 선택함이다. 즉 도장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쪼갠 사이로 지나감은 언약을 깬다면 이렇게 몸이 두 개로 쪼개질 것을 각오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쪼갠 송아지 사이를 지나면서 언약을 세우고도 그것을 깬 유다 백성들에게 시체가 되어서 공중의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렘 34:18-20).
그런데 오늘 사건은 매우 묘하다.
본래 언약이란 당사자들이 함께 이 쪼개진 사체를 지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사체를 아브람은 지나지 않았다. 오직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이 그 사체 사이를 지나갔다(17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다. 환경에 따라 바뀌는 언약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파기될 수 있는 언약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언약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언약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우리는 이러한 언약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 사대 만에 땅에 돌아올 것임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서 400년을 지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매우 특이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냥 가나안을 주시지 않는지.
그러나 그 이유를 밝히신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을 대표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가나안에는 여러 족속이 살고 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이 땅을 주시려면 이들을 모두 쫓아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전쟁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원치 않으신다.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400년간 이 땅을 가나안 족속에게 양보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400년 후에 이들이 죄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임을 알고 계신다. 그 때 하늘의 불로 이들을 멸하실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직접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이들을 멸하도록 하실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의 전쟁을 모방해서 일으킬 순 없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애매한 사람을 죽이는 탐욕의 전쟁을 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때가 아님을 말씀하시고 타 지역으로 가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거기에 놀라운 섭리로 이끌어내시고 다시 가나안에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사 대 만에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이 무려 400년이나 된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100년이 넘어간 것을 기준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족보로 본다면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에 내려간 뒤에 모세에 이르기까지 사 대였다. 레위-고핫-아므람-모세 이렇게 이어진다.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에게 언약하시고, 반드시 실행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