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4월 27일(수)■
(창세기 21장)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묵상/창 21:22-34)
◆ 아비멜렉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비멜렉은 개인 이름이 아니라 당시 그럴게 있는 국가의 최고 권위를 가리키는 칭호다.
따라서 아브라함 시대의 아비멜렉과 이삭 시대의 아비멜렉이 다른 사람이다.
아비멜렉은 자신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친교를 맺기를 원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하는 바람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하다가 그와 그의 모든 집안이 몰살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했다. 다시 말해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군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무서웠다. 하나님 사람의 가장 큰 무기와 힘은 하나님이시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았을까?
물론 사라의 사건도 있지만, 수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새삼스럽게 이렇게 친교를 맺고자 함은 어찌된 이유일까? 무엇을 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다고 결론을 내렸을까?
아마도 아브라함의 만사형통을 보고 내린 결론일 것이다.
자기들은 우물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아브라함은 파는 족족 우물이 터졌다. 양과 염소와 각종 가축이 자기들과 다른 비율로 늘어난다. 왜 똑같은 환경, 똑같은 조건인데 아브라함은 형통하는가?
결론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까?
하는 사업마다 잘되고, 자녀들이 대학에 잘 붙고, 만사형통함을 보고 알까?
아니다.
신약에 와서는 그런 것이 미끼가 되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더욱 추구하게 만든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잠시 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임을 알려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빌 3:8). 그것을 위해서는 심지어 세상에서의 고난도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시 119:71).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무엇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까?
모두가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며, 영적 에너지가 넘치는 것에서 자신들과 다름을 느낄 것이다.
◆ 브엘세바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중동에서 선교하다가 온 선교사의 말에 따르면, 중동에서 목축하는 자들의 부의 측정은 우물의 개수로 한다. 갈렙은 자기 딸이 시집갈 때 큰 혼수품으로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다(수 15:19).
우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면 아브라함의 종들과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가지고 싸웠다는 것이 이해된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암양 새끼 일곱을 주면서 분명한 언약을 세운다. 히브리인들에게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수다. 맹세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싸바'인데, 이 말은 완전하다는 의미도 있고, 일곱 번 말하다라는 의미도 가진다.
브엘세바란 브엘과 세바의 합성어인데, 브엘은 '샘', 세바는 '일곱'이란 의미를 가진다. 싸바와 같은 의미로서 결국 맹세의 샘이란 뜻이다. 후에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동네 이름이 된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에셀 나무는 악조건하에서도 단단하게 잘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나무들을 심어서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모든 성도의 신앙생활은 예배에서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곧 예배라고 하며 따로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궤변이다. 삶이 예배인 사람이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함에서 나오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아주 간단하게라도 하나님께 경배하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하고, 의롭다고 해주신 하나님을 감사하자.
그리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짧게 하면 1분도 안되는 이런 시간조차 아까워하면 어떻게 하루를 예배자로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님,
저를 예배자로 불러주셨음을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예배자로서 신분을 잃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