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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1-12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다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2.04.28|조회수1,276 목록 댓글 0

■2022년4월 28일(목)■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묵상/창 22:1-12)

 

◆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성경에서는 '시험'이란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마귀가 행하는 것으로서 '유혹(temptation)'이란 의미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시험(test)'이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모두 극복해야 할 '시험'이지만 목적이 다르다.

마귀는 타락시키려는 목적이지만, 하나님은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가령 학생에게 술과 담배를 권하는 것은 타락시키려는 목적이지만, 중간고사를 치르는 것은 실력을 더욱 단단히 하고 자기 위치를 파악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야고보서(약 1:13)와 주기도문(마 6:13)에서 언급한 시험이란, 바로 마귀가 주는 시험, 곧 유혹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신앙이 제대로 섰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미녀를 가지고 유혹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아브라함에게 하신 시험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시려는 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00세에 얻은 아들, 그것도 오직 한 명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아들 외에 없다. 이스마엘은 내보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번제란 희생물을 칼로 각 지체를 자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 제단 위에 올려 모두 불태우는 것이다(레 1:6-9). 아브라함이 번제가 무엇인지 모를리가 없다.

 

하나님의 이 요구 앞에서 충분히 주저할 만하건만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다. 이 부분은 자식을 가진 아비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 같으면, 차라리 제가 번제물이 되겠다거나 차라리 제 재산을 다 기부하겠습니다 따위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했을 법 한데 아브라함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행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히브리 기자는 이것의 비밀을 밝힌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즉 아브라함은 놀라운 믿음의 논리를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언약을 세우고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셨는데(창 17:19, 21:12), 인제 와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심은 분명히 모순이다. 하나님은 모순되지 않으시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논리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이삭을 죽여도 반드시 다시 살리시는 것, 즉 부활시키시는 방법뿐이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부활의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었다.

 

◆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떠나서 제 삼일에 모리아 산에 도착했다.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 정상에 위치한다. 예루살렘은 거대한 산으로서 봉우리가 크게 세 개가 있는데, 모리아 산, 감람 산, 시온 산으로 나뉜다. 후에 솔로몬은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지었다. 오늘날에는 그 자리에 이슬람 성전이 세워져 있다.

 

아브라함이 있었던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까지 거리는 도보로 90km 정도 된다(아래 구글지도 참조). 제 삼일에야 여기에 도착했다.  시간이 짧으면 순간적인 감정으로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무려 사흘이나 되는 시간은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흔들림 없이 목적지까지 갔고, 그리고 주저함 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 믿음이 변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여행하던 이 삼일은 아들이 죽어버린 시간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침 새벽에 잡혀서 매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과 비슷하다.

 

◆ 이삭을 제단에 바치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단에 바칠 때 아들 이삭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을까?

6절에 번제 나무를 아들에게 지웠다고 하는데, 번제에 쓸 나무의 무게는 절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짊어질 정도라면 적어도 십 대 후반은 족히 되었을 법하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삼십대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힘을 가진 아들이 백세 넘은 힘없는 아비가 자기를 결박하고 번제단에 올려놓으려고 하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법 한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순종했던 것 같고, 이런 모습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

 

◆ 하나님께서 칭찬하심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오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하신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경외하는 줄 모르셨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기셨다(창 15:6). 자식이 없는 그에게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다. 그것은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믿음이었다. 그렇게 아무 행동이 없어도 인간의 중심을 다 파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이삭을 바친 사건은 후대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리고자 하심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알고 계시지만, 후대에 사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인지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이제야 아노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믿음이란 이렇게 행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깨우치시는 교훈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자신이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약간의 성경 지식과 약간의 기도하는 시간과 봉사활동으로 자신은 꽤 잘 믿는 사람인 줄 착각한다. 하나님은 아시겠지만, 문제는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통 세상 염려로 가득차 있다. 종종 하나님의 시험은 이러한 나의 믿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신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 2:19-22)

 

주님, 

여전히 믿음 없이 살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해주시고, 주님을 더욱 깊이 믿게 해주셔서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행위가 함께 하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 산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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