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4일(목)■
(요한계시록 5장)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묵상/계 5:1-14)
◆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시록에서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간과하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일곱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다.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고 하셨다(6). 이는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를 가지셨음을, 일곱 눈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성령으로써 모든 사람을 통치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가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다. 한 개의 인만 있어도 아무나 뗄 수 없는데,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는 것은 자격 없는 자가 절대로 뗄 수 없는 두루마리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를 펼쳐볼 사람이 없는 것에 사도 요한이 크게 울었다는 것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왜 울었을까? 그것은 이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 역사의 종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펼쳐지지 않으면 왜곡된 세상, 곧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고, 유혹과 죄악이 횡행하는 세상, 탐욕으로 서로 물고 뜯는 이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 이 인봉이 떼어지지 않으면 마치 체기로 소화가 안 되어서 고통스럽듯이 역사는 희망이 없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세상에서 성도들이 억울하게 고난받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이 인봉이 떼어져야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되게 될 것이다(계 10:7),
◆ 일곱 인을 떼시는 분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시는 분이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잘 묘사되어 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께서 결국 역사의 꼬인 타래도 풀어내실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Lion), 다윗의 뿌리라고 하셨다.
특히 유대 지파의 사자라는 표현이 흥미로운데, 야곱은 유대 지파를 사자 새끼(Lion's whelp)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창 49:9).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Lion)라고 하심은 주님께서 유대 지파의 자손이 아니라 오히려 어미가 되심을 의미한다.
또한 다윗의 뿌리라고 하심은 비록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지만, 사실은 예수께서 다윗 왕의 근본되시며, 주님 되심을 의미하신다(시 110:1). 다시 말해서 메시아는 제2의 다윗, 또는 다윗의 그림자가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메시아의 그림자였을 뿐임을 암시한다.
이것을 깨달아야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의 차이를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확장한 나라가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영적 유대인들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유대인들조차 거듭나지 않으면 시민이 될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나라다.
◆ 어린 양께 돌려지는 찬양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돌려는 찬송과 영광은 상상만 해도 그 장엄함에 가슴이 웅장해지고, 감동이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받는 이 찬양과 영광,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에게는 이 모습처럼 어색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이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만이 받을 수 있는 찬양을 함께 받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며,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토론하게 되면 성경의 이 부분을 펼친다. 그리고 질문한다. 과연 피조물이 이런 찬양과 경배를 받아도 되는가?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고, 절하지 말라"(출 20:3-5)인데, 오늘 본문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했다(14). 심지어 하나님 만을 모시는 네 생물도 어린 양 앞에 엎드렸다(8). 과연 피조물에게 이런 경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신하가 뛰어나도 왕과 같이 영광을 누릴 순 없다. 그렇게 되면 그는 역적이며,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왕의 아들은 다르다. 왕의 아들은 왕과 함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예수님은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영원부터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신분(identity)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의 신분을 알게 되면, 그런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어울리신 30여 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얼마나 황송할 정도의 엄청난 은혜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신분을 깨달은 자들만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신분을 아는 자만이 성찬에서 먹는 떡과 잔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다.
이제 이분께서 일곱 인을 하나씩 떼실 것이다.
그리고 뗄 때마다 이 세상은 요동칠 것이다.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마지막 때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주님,
주님께서 어떠하신 분이심을 더욱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