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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63장7-14 /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19.07.12|조회수341 목록 댓글 0

■2019년7월12일(금)■


(이사야 63장)

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묵상) "이제 어디 계시냐"(11)
우리는 성경에서 놀라운 하나님을 본다.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신다.
그런데 막상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 것처럼 보인다. 이게 어찜인가?
성경에서 그토록 놀랍게 역사하시던 하나님은 어디계시는가?

그런데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한탄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시 인간들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침공과 억압 속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과거 출애굽시대에는 그 강한 애굽 군대를 꼼짝 못하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하셨던 하나님께서 왜 이제는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시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침묵의 이유가 자기 죄때문임을 알지 못한다. 
회개해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원망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하나님의 침묵이 모두 개인의 죄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것은 당장 닥친 환난보다도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이다.
욥은 그 많은 고난보다도 하나님의 침묵이 더 고통스러웠다. (욥 14:2)
그러나 욥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욥은 깨달았다. 자신이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릴 줄 알았어야 함을.
다윗도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그러나 이 질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마시고, 돌아보아 달라는 간절한 탄원을 표현한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원망하지만, 믿음을 가진 자들은 탄원은 할지언정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9)
9절은 달리 번역된 부분이 있어서 설명이 필요하다. 
과거에 표준새번역으로 성경을 통독한 적이 있었는데 표준새번역은 의역이 많고 번역 자체가 가끔 불경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야서에서  9절이 개역성경과 너무 달리 번역하여서 흥미로웠다.
표준새번역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었다.
'주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사자나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께서 친히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위의 다른 성경의 번역과 너무나 달라서 어느 것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연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히브리어 원문에 '아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로'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역개정성경은 이것을 무시하고 번역했다. 그것을 넣으면 너무 이상한 번역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표준새번역은 그것을 이용해서 너무나 멋지게 번역해놓은 것이다.
즉 주님께서 사자나 천사를 보내지 '않고' 직접 손수 오셔서 우리를 구하셨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은 신약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대속과 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속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침묵 속에서도 기다리는 인내를 의미하기도 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자. 범사에 감사하자. 그것이 믿음이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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