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묵상)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소원을 얼어붙게 하는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부자는 천국에 거의 못간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부자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농담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께서는 공산주의처럼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악과 선을 구분하시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부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부(富)' 자체를 악으로 간주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약태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고 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그 이유를 볼 수 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즉 부자가 되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여러 가지 악한 욕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돈을 수집하는 데는 집착하지만, 정작 써야 할 곳은 무시해버린다.
부자가 되려는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어려움을 준다. 그리고 그 부를 지키기 위해서 수없이 악을 행하게 되고, 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돈을 의지하게 되며 각종 오만에 빠지게 된다.
부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 자기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결코 돈을 쓰지 않는 유형 - 미련하고 어리석은 부자
2. 자기를 위해서는 잘 쓰지만 남을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는 유형 - 철저하게 이기적인 부자
3. 자기를 위해서도 잘쓰고 남을 위해서도 잘쓰는 유형 - 바람직한 부자
4. 자기를 위해서는 잘 안쓰지만 남을 위해서는 잘 쓰는 유형 - 신앙적인 부자
대부분의 부자는 1번과 2번 유형이다. 부자가 되려고 애써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형이다.
성경의 다윗과 대치했던 나발은 2번 유형이다.
이런 유형들이 남을 위해서 돈을 쓸 때는 오로지 한 이유뿐이다.
그것이 나를 칭찬받게 하는가?
오로지 이 한 목적 외에는 결코 돈을 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3번 유형은 결코 노력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를 쥐어준 사람이다.
욥이 그와 같은 자였다. 그는 어마 어마한 부를 가졌고, 스스로도 그 부를 누렸지만, 남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쓴 자다.
그런데 4번 유형은 매우 보기 드문 훌륭한 성도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부를 모두 버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아낌없이 소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줄어들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이라고 하신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자다.
참으로 우리가 열심히 주는데도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를 주어주셨을 때는 그에게 사명이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쓸 자신이 없으면 결코 부를 바라지 말라.
내가 아는 형제 하나는 직원들이 아침 커피를 마실 때, 같이 먹으라고 종종 빵을 사왔다.
그러자 한 직원이 왜 쓸데없이 돈을 쓰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가족을 위해서 쓰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타인들을 위해서 쓰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는 사고가 굳어 있었다. 그러자 그 형제는 말했다. "아, 저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 쓸데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베푸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추석을 맞이해서 형제들끼리 모이면 재산타툼하는 것이 다반사다.
부끄러운 것이다. 어려운 형제들을 도우려고 하고, 더 가지려고 하는 행위를 버리자.
더 가지려고 해봤자 하나님께서 회수하시면 내 손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남에게 주려고 애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부를 주실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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