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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1장 10-14절 묵상-예배가 오히려 죄악이 될 때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19.02.11|조회수678 목록 댓글 0



(이사야 1장)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묵상)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아'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호칭은 심한 모독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들을 불렀다. 이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의 삶을 고집한 결과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타락하고 불의한 삶을 살면서도 단 하나는 열심히 했다. 
그것은 제사드리는 것, 분향하는 것, 월삭(매월 1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 대회(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민족적으로 크게 모이는 것)로 모이는 것 등이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자체를 '가증히 여기시고' 그것 자체를 악한 것으로 규정하신다.
13절은 킹제임스 버전이 더 적나라하게 번역했다.
'헛된 예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게 가증함이요, 새 달들과 안식일들과 집회들을 모으는 것도 내가 견딜 수 없으니, 심지어 엄숙한 모임까지도 악한 것이니라.'

제자들이 율법을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행 15:10)이라고 표현한 것은 할례나 제사가 아니다. 이런 것은 조상들이 너무나 잘 멨다. 제자들이 언급한 율법은 도덕법을 포함한 율법 전체다. 
유대인들은 빼놓지 않고 제사드리고, 안식일과 모든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써 자신은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성실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헸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고, 더 이상 정의롭지 않고, 신실하지 않은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철퇴를 내리신다.  
'내가 그런 것들을 가증히 여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묘사하자면, 헌금 바치고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헌금 바치는 것이나 예배를 전혀 고려치 않으시고, 오히려 나의 삶을 주시하고 계시면서 나의 삶이 악한 삶이라면, 나의 헌금이나 예배 자체를 죄악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내 딴에는 시간과 돈을 바쳐서 충성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역겹다고 하실 때 얼마나 충격이겠는가?

말라기 선지자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전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우리는 교회당에 단 한사람이라도 교인을 더 늘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교회당을 폐쇄하기를 원하신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탐욕과 불의와 무자비한 삶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경종이다. 교회 안에서는 매우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 같이 하지만, 막상 밖에 나가서는 비신자보다 더 구두쇠가 되고, 더 교활하고, 더 탐욕스러울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헌금과 예배를 역겹게 여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 회향 근채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맹인 된 인도자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3,24)
위의 말씀을 보라! 낙타의 크기는 하루살이의 수만 배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은 무엇이 달랐는가?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낙타로, 의와 긍휼과 믿음은 하루살이로 취급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일조를 하루살이로, 의와 긍휼과 믿음은 낙타로 취급하셨다. 
마귀는 성도의 신앙을 간단하게 망치게 만들 수 있다. 신앙의 중요순위를 이렇게 살짝 뒤바꾸어 놓기만 하면 된다.  

만일 내가 십일조 안하면 망하는 줄 알고 두려워하면서, 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나의 신앙은 철저하게 기만된 것이며, 나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중임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내가 속해있는 교회가 십일조를 낙타로, 의와 긍휼과 믿음을 하루살이로 취급한다면 당장 그 교회를 나와라. 그 교회는 말라기 선지자가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폐쇄하기를 원하시는 곳이다. 

그동안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켰던 나의 미련한 행위를 회개하자.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회복하자. 

내가 있는 곳에서 정의를 행하고, 내가 돌봐야 할 가족과 친척과 교회 형제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대인관계에서 신실함을 지켜야 한다. 그럴 때 나의 헌금과 예배와 묵상이 하나님께 의미있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있는 제사가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어떤 곳에서도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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