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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드로전서 2장4-10 / 성도들은 예외없이 모두 제사장들이다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0.05.22|조회수164 목록 댓글 0

■2020년5월22일(금)■

(베드로전서 2장)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묵상/벧전 2:4-10)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4)
  주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living stone)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를 예언한 시편 118편 22,23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너무 잘 표현했다. 집을 건축할 때 네 모퉁이(corner)의 돌은 기둥 역할을 하는 돌로서 가장 중요한 돌이다. 그 중에 모퉁이의 머릿돌(head stone)은 모퉁이 맨 밑의 기초가 되는 돌이다. 집을 지으려면, 네 모퉁이에 이 돌을 놓고 돌을 쌓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집을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한 돌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이런 귀중한 돌로 쓰였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신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물론 모퉁이의 머릿돌은 한 개가 아니라 4개다. 예수님의 유일성에 비해 모퉁이의 머릿돌은 무려 4개나 된다는 것이 비교 대상으로서 다소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비유의 목적은 예수님의 유일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이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을 말하고자 함이다.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가장 중요한 돌이 되다니!

 그리고 베드로는 이사야 28장 16절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을 인용한다. 이렇게 선지자들은 열심히 메시야의 어떠하심을 예언했다. 예수님은 갑자기 역사 속에서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오랫동안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되어지고, 기대되어졌던 분이시다. 

  세상의 우상이나, 자기 신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결국 그것의 거짓됨과 헛됨때문에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참됨과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으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산 돌이 된 성도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5)
  예수님만이 산 돌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산 돌이 되어서 하나님의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는 자가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서 신령한 집의 돌로써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주님, 예수님과 함께 집을 이루고 있는 이 영광, 이 복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 제사장된 성도들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5)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만이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성도들을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9)이라고 선언한다. 이로서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완전히 철폐된 새로운 나라임을 확실하게 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복을 누린다. 

  신학교 졸업장과 안수만이 제사장 자격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은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기독교 역사 2000년 속에서 신학교가 세워지고 졸업장과 안수로 목사를 세우는 관습은 200년 남짓 된다.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에는 많은 교육과 훈련과 영적인 성숙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졸업장과 안수로서 대치한 것은 교회의 타락을 부추겼다. 신학교의 깊은 교육은 매우 유용할 수 있지만, 신학교가 목사 자격을 주는 기관이 된 것은 큰 퇴보다. 그렇게 되자 여기 저기 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조차 졸업장과 안수 받았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다스리는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폐해는 성직자 계급이 생기면서 성도들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조차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중국에 갔을 때, 수 많은 중국의 가정교회들이 단지 안수받은 목사가 없다는  이유로 성찬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감사와 찬송을 하는 복된 예배인데, 그런 것에 왜 목사 자격이 필요한가? 

  교회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두는 순간, 교회의 각종 의식이 구약교회를 본받기 시작했다. 예배당은 성전으로 둔갑하고, 세례는 할례 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목사는 제사장으로, 헌금은 제사로 받아들여졌다. 한마디로 유대인들이 볼 때 이방인들의 교회는 유대교를 본받은 조악한 모조품이 된 것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3대 원리 중에 하나로 '만인제사장'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자신조차 현실과 타협하느라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애석한 일이다. 교회의 인원이 축소될지언정 진리에 순종했어야 했다. 그러면 훨씬 더 교회가 순결하고, 영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주 예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삶을 살자. 

  주 예수님, 저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시고, 주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입술을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파하는데 사용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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