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6월25일(목)■
(레위기 5장)
1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2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4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6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8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9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10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12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13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묵상/레 5:1-13)
◆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
율법 중에 하나만 어겨도 그는 죄를 범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외에도 무엇이 죄이며,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열거한다.
>재판석 앞에서 증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증언하지 않을 때
>부정한 동물을 만졌을 때
>부정한 사람에 접촉하였음을 깨달았을 때
>함부로 한 맹세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깨닫는다.
함부로 내 뱉은 맹세에 대해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다.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사실, 지킬 수 없는 맹세나 지켜도 안되는 맹세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맹세일지라도 속죄 받을 길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사사기에서 입다가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승리할 경우 자기에게 첫번째로 나아온 자를 번제로 바치겠다고 맹세한 것은 유명한 예다. 그는 무남독녀인 사랑하는 딸이 자기에게 나아올 줄을 몰랐다.(삿 11:31-35). 처녀의 몸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졸지에 죽임을 당하게 된 딸도 기가 막혔지만,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입다도 기가 막혔다.
입다는 맹세했다는 이유로 과연 딸을 바쳤어야만 했을까?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맹세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음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맹세는 우리를 완전히 얽어맨다. 그리고 이 세상은 내 생각대로 흐르지 않고 도저히 맹세를 지킬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몰아갈 수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 5:34)라고 하셨다.
집회에서 강사의 권면에 별 생각없이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맹세했지만, 나중에 보니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혀 다른 것이라면, 어떻게 할까? 부르심을 무시하고 굳이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할까?
흥분상태에서 예배당 건축헌금을 무리하게 약정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을 보았다. 감정에 치우쳐서 그런 것을 약속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시간을 두고, 차분히 생각해야 하며, 한번 약속한 것은 신실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맹세가 아니라, 공동체와의 약속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중에 공동체와의 협의로 조종될 수도 있다.
◆ 가난한 자를 위한 속죄제
속죄제는 숫소, 수염소, 암염소, 암컷 어린양 등으로 드려졌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그것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런 자에게는 비둘기 새끼 두 마리로 대신할 수 있게 하셨고, 그것조차도 어려운 자에게는 밀가루 한 사발로 대신할 수 있게 하셨다. (에바는 광주리를 의미한다. 십분의 일 에바는 대략 한 사발 정도 될 것이다.)
가난한 자를 위해 고운 가루로 속죄제가 가능하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는데 어떻게 속죄를 고운 가루로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어차피 구약의 모든 제사는 그림자요 약속어음에 불과할 뿐이다. 어차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유효해지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를 보면서 두 가지를 깨닫는다. 아무리 가난한 자도 속죄 받을 길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아무리 가난해도 속죄 받는 데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 없는 속죄란 없다.
구약에서는 가장 귀한 제물이 숫소였다. 그것으로 제사장과 회중의 죄를 대속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흘리시는 대가를 치르셨다. 오, 이토록 위대하고 귀중한 제물이 어디있단 말인가? 숫소의 희생으로 죄를 대속했다면, 어찌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 죄를 대속할 수 없단 말인가?(히 9:13,14)
자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모든 죄에서 건지신 주님, 헛된 맹세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부정한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성도의 삶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