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10월26일(월)■
(마태복음 6장)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묵상/마 6:22-24)
◆ 눈은 몸의 등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22)
산상수훈에서 이 구절만큼 쉬운 듯 하면서 난해한 구절도 없는 듯 하다. 쉬운 이유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눈이 정말 우리 몸의 등불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눈이 밝아야 우리는 제대로 걸을 수 있고, 이것 저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안경점 주인이 좋아할만한 상식을 새삼스럽게 말씀하실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도입했다. 우리가 좋은 것을 봐야 우리가 좋게 된다든가, 아니면 마음의 눈으로 해석하여 올바른 분별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해석이 해로운 것은 아니며, 여러 유익한 교훈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해석들은 주님께서 왜 문맥에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눈' 이야기를 하시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마치 대통령이 국가 대계를 말하는 신년사 도중에 갑자기 '발이 빨라야 축구를 잘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생뚱맞다. 그 말이야 맞지만,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성경 해석의 기본 중에 하나는 문맥을 살피는 것이다.
즉 앞 뒤 구절을 살펴야 하는데, 이 구절의 바로 앞구절은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21)이다. 그리고 뒷구절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이다. 즉 보물, 재물 등의 말씀을 하시는 도중에 꺼내신 말씀이다.
따라서 이 구절이 자연스럽게 해석되려면, 앞 뒤 구절과 연관되어야 한다. 나는 이 구절을 해석하는 키(key)는 24절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재물 이 두 개에 모두 마음을 둘 수 없다는 의미를 말씀하시고자 눈을 비유로 드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볼 때, 초점을 한 곳에 두어야 제대로 본다. 그래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우리 눈은 한꺼번에 여러 개를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화살을 쏘는 자가 여러 군데에 한 눈을 팔면 결코 과녁을 맞출 수 없다.
놀랍게도 KJV에는 '눈이 성하면'을 'thine eye be single'이라고 번역했다. 즉 눈이 'single(단일)'하면 온 몸이 밝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앞 뒤 문맥에 잘 어울린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을 것인지, 땅에 쌓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며, 하나님과 재물 중에 어디에 중점을 둘 지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만 바라보는 눈을 가지면 온 마음과 영이 밝게 될 것이고, 반면에 눈이 하나님과 재물, 양쪽을 바라보게 되면 걸려넘어지게 되고, 둘 다 잃게 될 것이며, 아예 재물에 눈이 고정되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안계시고, 그는 완전한 어둠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눈이 single(단일)해야 한다. 오로지 주님에게만 눈이 고정되어야 한다.
◆ 하나님과 재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
재물로 번역된 헬라어는 '맘모나스(μαμμωνας)'이다. 이것은 돈을 포함해서 모든 재물을 포함한다. KJV에서는 원어를 살려서 'mammon'이라는 영어 단어를 만들어냈지만, NIV에서는 'money'로 번역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과 필적할만한 우상은 바로 '돈'이다. 모두가 돈에 미쳐있다. 사람들은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 말했듯이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마음의 평화는 살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참으로 많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면 안된다. 즉 우리의 삶 속에서 돈의 논리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조그마한 교회의 목사가 있었다. 그런데 셋이나 되는 아이들이 초중고에 다니면서 늘 생활비에 쪼들렸다. 어느날 다소 큰 교회로 부터 초빙 제의가 들어왔다. 지금 있는 곳보다 봉급이 많았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어떤 권면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에게 왜 목사가 되었는지를 상기시켰을 뿐이다. 그가 목사가 된 것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돈의 논리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인은 '주 예수님'이시다. 돈이 아니다. 아, 이 단순한 사실이 가장 많이 무시되고 있다. 돈을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이 돈보다 우선이다! 결코 돈 때문에 약속을 어기거나, 믿음을 배반하거나,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겠다.
주님, 제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게 하소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보다 돈의 논리로 선택하지 않게 해주시고, 돈 때문에 약속을 저버리거나, 돈 때문에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