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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28-34 / 기회를 놓친 사람들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0.11.06|조회수1,770 목록 댓글 0

■2020년11월6일(금)■

 

(마태복음 8장)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묵상/마 8:28-34)

 

◆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 8장 26-39에도 있다. 몇가지 차이가 있는데, 마태복음은 '가다라'지방인데 누가복음은 '거라사'지방이다. 아마도 이 귀신 들린 자들은 거라사 지방에 있었던 자들이 맞을 것이다. 당시에 가다라는 헬라의 10개도시를 지칭하는 데가볼리 중에 하나였을 정도로 제법 큰 도시다.  반면에 거라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성읍이었고, 비록 가다라와 다른 지역이지만,  가다라 인근 지역이었다.  그래서 마태는 쉽게 그냥 가다라지방으로 지칭했던 것 같다. 마치 수도권에 사는 사람을 서울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과 같다. 귀신들린 사람도 마태복음에는 둘이라고 나왔지만, 누가복음에는 한 명으로 되어있다. 귀신들린 사람이 두 명일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에게 종속된 자로 되어 있어서 누가는 한 명으로 기록한 듯하다. 

 

나는 복음서에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 오히려 복음서가 얼마나 진실한 기록들인가를 느끼게 한다. 조작한 책이라면 이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재판에서도 여러 명의 증인들이 모두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이 증언하면 그것은 오히려 사전에 입을 맞춘 조작된 증거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보는 위치가 다르고 생각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똑같이 증언하겠는가? 

 

◆ 귀신의 정체

 

누가복음에는 이 귀신들린 자에 대해 상세히 써 놓았다. 이 귀신들은 너무 많아서 이름이 '군대'이며, 이 사람은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상태이며 무덤 사이에 거하고 있는 자라고 했다(눅 8:27) 그리고 워낙 사나워서 아무도 통제할 수가 없고, 심지어 그를 쇠사슬로 묶어놓으면 그것을 끊고 도망갈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예수님이 근처에 오시자 도망가지 않고 나아와서 엎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도망갈 엄두가 안났을 것이다. 모세나 엘리야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그 앞에 계신 것이다. 압도되는 능력은 오금이 저리고 정신이 아득해질 일이다. 

 

귀신들이 이렇게 외쳤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는 이 말에서 귀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아들을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상대방이 워낙 강한 사람이면 원수니 적이니 하는 말을 못한다. 살기 위해선 그의 눈길을 피하고 볼 일이다. 

 

대학시절에 우리 과의 여러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모임을 가졌는데, 그 중에 한 여학생이 어느 날 교회에서 테이프를 입수해서 가지고 왔다. 그 테이프에는 귀신들린 자가 쫓겨나가는 것이 녹음되어 있었다. 그 테이프 속에 어떤 사람이 귀신에게 물었다. "예수님을 아느냐?" 그러자 그 귀신은 말했다. "안다. 그런데 나와 상관없어" 이 자매는 너무나 성경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성경을 믿게 되었다. 지금은 멕시코에 남편과 함께 선교하러 갔다.

 

오늘 본문에 귀신은 '때'를 언급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이 언젠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될 때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때에는 귀신들이 모두 잡혀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 20:10).

 

그러나 지금은 마귀와 귀신들이 아직 제어되지 않은 때다. 이들은 모두가 사람들을 홀리고 미혹하고 있다. 우리가 말씀에 굳게 서서 저를 대적해야 할 때다.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바랬다. 귀신이 짐승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거하는 장소가 영이 아니라 육체이며 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아직 이들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될 때가 아님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이들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아직 자기 역할들이 있었음을 인정하신 것이다.

 

 

◆ 은혜의 기회

 

돼지들이 몰살된 것은 돼지 치던 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돼지 치던 자들은 누구였을까? 유대인들은 돼지를 가증하게 여겼던 시기였으므로, 이들은 아마도 이방인이었든가 아니면 타락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돼지의 몰살이 이들의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재산상의 손해만 생각하고 접근할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돼지치던 자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주시고 계신 것이다. 

 

돼지 치는 것은 명백히 율법에서 금지된 것이다. 돼지 치던자들과 주인들이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존경하는 노 자매님은 젊었을 때 산부인과를 하면서 낙태수술로 수입을 짭짤하게 올리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딸이 반대의견을 내놓았을 때 양심이 찔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수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 불이 났다. 다 타고 철제기구가 시커멓게 남았을 뿐이다. 그동안 쌓아올린 그 재산이 하루 아침에 날라간 것이 너무나 허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할 수 없는 그것을 누군가 청산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원한 생각도 들었다. 그는 그 주일에 바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한없이 울면서 회개하였다. 지금은 얼마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돼지치던 자들과 주인에게는 이것이 기회였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 회개의 기회를 무산시켜버렸다. 오히려 예수님이 자기 지방에서 떠나기를 구했던 것이다. 이들은 다시 돼지 치기에 몰두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영생을 버리고 돼지를 택한 것이다. 지금 지옥에서 얼마나 후회할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상당수의 일은 영적인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주시는 것이다. 병이 들어도, 사업이 망해도 모든 것은 내가 영적인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주신 것이다. 

 

우리 영혼이 어떻게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채 세상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영적인 복을 받을 기회를 외면해버린 적은 없는가?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주님, 제게 일어나는 많은 일 속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회들을 놓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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