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4(목)■
(마태복음 18장)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묵상/마 18:19-20)
◆ 합심기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
이 약속의 말씀은 놀랍다.
놀라운 부분은 다름이 아닌 '무엇이든지'와
'그들을 위하여'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두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무조건 아무나 두 사람만 있으면 이 약속의 조건은 충족되는가?
19절에서 '다시'라는 말을 주목하자. 이 말씀은 그 앞구절의 연장선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앞구절에서는 교회에서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똑같이 하신다고 말씀하셨다(18절)
즉 이 말씀은 교회에 주신 약속이다.
한 사람은 교회가 될 수 없지만, 두 사람이면 비로소 교회가 성립한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이루고, 그들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
아무리 소수라고 할지라도 교회의 기도는 강력하다. 온 교회가 같은 기도제목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물론 그 교회가 거듭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이어야겠지만.
사도행전에서 보면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하기도 했다(행 4:31).
주님의 이 귀한 약속을 교회는 명심하고, 교회에 일원은 우리들은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주님의 임재 약속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
교회의 최소 단위가 2명이다. 그 두 명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 곳에 주님께서 임재하신다. 주님은 사람이 적다고 자기 몸된 교회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개척을 무척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명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두 명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바로 그 곳이 주님의 몸된 교회이며, 주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신다.
과거에 어느 집회에 초빙되어서 갔다. 제법 먼 거리를 운전하여 도착했는데, 막상 앉아 있는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초빙한 사람은 내게 무척 미안해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해보라! 최고의 선생되신 예수님께서는 겨우 두 사람만 있어도 그 자리에 오신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며 그들의 마음에 평화와 은총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코로나 팬데믹을 허락하신 것은 수천, 수만 명이란 숫자에 취해서 한 영혼을 귀하게 보지 못하는 교회들을 향한 경고일 수 있다. 이제는 그렇게 숫자에 집착한 목회방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두 세사람이 모인 곳이 반드시 한 건물이어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비록 오프라인 대면 예배보다는 여러 가지로 부족할지라도, 온라인 상에서도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다.
나는 zoom과 같은 영상채팅 수단이 만들어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zoom과 같은 온라인 대면 방법이 없었더라면 교회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런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예배가 가능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하심이라고 믿는다.
나는 온라인으로 드리는 성찬예배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온라인으로 드리는 기도회에서도 성령의 감동을 느낀다.
이 팬데믹 상황은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수많은 교인들을 떠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온 세계의 교회가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게 되는 기회다. 이 기회에 교회가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답게 되었으면 한다.
이 팬데믹이 끝나면 아마도 교회 교인 수가 많이 줄 것이다. 그러나 두 세사람일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거기에 주님께서 임재하심을 기억하자.
주님, 우리가 모일 때 임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랜 팬데믹 상황이 많은 불편과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그리고 온 세계의 교회가 이 상황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