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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13-15 / 어린아이같게 하소서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1.18|조회수263 목록 댓글 0

■2021-1-18(월)■

 

(마태복음 19장)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묵상/마 19:13-15)

 

◆ 어린아이들의 천국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14)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심지어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마 18:3)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재차 말씀하신다. "천국은 이런 사람(어린 아이)의 것이다."

 

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이 말씀을 받았다. 우리는 철저하게 구원의 확신에 대해 교육을 받은 터라 이렇게 생각한다. 설마 어린아이같지 않았다고 해서 천국에 못들어가겠어? 내가 예수를 믿는데...

그것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자기 사위들에게 경고했을 때,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던 것과 같다(창 19:14). 그 결과 사위들은 소돔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  성경보다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더 열심히 배워서 아첨, 거짓말, 과장, 속임수 등에 익숙한 어른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은 악한 세상에서 제법 잘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님께서는 결단코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신다.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본받아야 한다.  

 

도대체 어린아이에게서 무엇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것일까?

 

어린아이는 어리석다. 

이것조차 본받으라고 하시는가? 

그렇다. 어린아이의 어리석음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경은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지만,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다(고전 14:20). 우리가 악을 행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미숙하고 한심해서 누구도 내게 속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는 겸손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하셨다. 어른들은 대단히 겸손한 듯한데도 실제로는 교만하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심지어 자기를 자랑하는데도 겸손하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어린아이는 남을 차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끼리 모아놓으면, 그 속에 세상 신분, 세상의 부, 세상의 가문 등은 모두 사라진다. 양반의 자식이나 상놈의 자식이나 똑같이 어울릴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적어도 세상 것으로 차별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순진하다. 

어린아이들은 논리보다도 사람을 택한다.

어른들은 누구의 논리가 더 그럴싸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제법 지혜로워 보이지만, 결국은 늘 속는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누구의 논리가 맞느냐보다는 누가 말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아빠가 말하면 그것은 곧 진리다. 아담은 그 천재적인 머리로 따져보았을 때, 뱀의 말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비극적인 세상이다. 

 

어떤 형제가 내게 욥기를 10년 이상이나 연구한 신학박사의 책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정말 깊이 분석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결론이 묘하다. 놀랍게도 그 저자는 욥이 하나님에게 설득 당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린다. 왜냐하면 욥이 던졌던 여러 개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명쾌하게 대답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란다. 단지 욥은 압도하는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마지못해 납득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결국 욥기의 제목은 님의 침묵이 아니라 욥의 침묵이 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그런 결론이 비록 매우 합리적이고 그럴싸해보이지만, 진리가 아님을 잘 안다.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사실을 그 저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논리의 경지가 아니라, 전적인 신뢰와 믿음의 경지다. 곧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그 사실이 믿어짐으로써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의 많은 것들이 감사가 되는 경지다. 욥의 회개는 바로 그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 친구는 어떤 풀리지 않는 질문 때문에 신앙생활이 흐트러졌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얻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송할 수도 없었고, 기도할 수도 없었다. 예베 시간에 그 질문이 떠오르면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게는 질문거리도 안되는 것을 그 친구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친구와 여러 날을 토론했다. 그 친구는 내 말에 상당부분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그 문제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난 후에 그 친구를 만났다. 신앙이 매우 돈독해있었다.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것을 어떻게 벗어났을까?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의 대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어느날부터 그 질문이 더 이상 질문거리가 안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다고 해서 모든 의문거리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있을 때 그 모든 문제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나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된다. 나는 이런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아멘! 아멘!

 

주님, 제 속에 너무나 어른들이 많습니다.  꼭 이해가 되어야만 움직이려고 하고, 겸손조차도 가장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쉽게 비난하며, 아첨하고, 과장합니다. 주님, 제게서 이런 어른스러움을 제거해주십시오. 어린아이의 겸손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전적인 신뢰가 있게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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