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9(화)■
(마태복음 19장)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묵상/마 19:16-22)
◆ 영생을 얻고자 하는 청년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16)
이 사람은 세 복음서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세 복음서를 종합해서 이 사람을 살펴보자.
먼저 마태복음에서는 그를 가리켜 '청년'(20)이라고 하였는데, 이 때 사용된 단어가 '네아니스코스' 즉 40세 이하의 젊은이다.
그리고 비록 그 청년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이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했다. 한마디로 반듯한 청년이다. 또한 그는 관원이었다(눅 18:18). 다시 말해서 당시 사회에서 권력층이었다. 재산도 조금 많은 것이 아니라 심히 많았다(눅 18:23). 마가복음에서는 이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길에서 무릎꿇고 물었다고 했다(막 10:17). 당시에 관리가 이런 태도를 취하기는 무척 어려울텐데, 꽤 겸손한 청년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의 진지한 질문과 그의 태도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셨다고 기록하였다(막 10:21).
한마디로 모든 것을 갖춘 청년이었다. 그러나 영생을 얻지는 못하였다.
◆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
이 청년의 질문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니까 '였다. 이 청년이 단순히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는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라고 전제를 함으로써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여지를 좁혀놓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대답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이 대답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명기해놓은 것이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8:5)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다음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모든 계명을, 항상(everything, continually)'(갈 3:10), 즉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리고 평생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계명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든 것을, 항상'이라는 율법의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갈 3:10).
그런데 오늘 본문의 청년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막 10:20).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대단하다. 이것은 착각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 청년 말처럼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빌 3:6).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달았다(딤전 1:15).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는 자임을 깨달은 것이다(갈 2:16). 그래서 성경은 율법 외에 다른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길을 주신 것이다(롬 3:21,22)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21)고 하셨다. 이 요구에 이 청년은 충격받았다. 이 청년이 심히 근심하면서 돌아갔다는 것은 그의 이웃 사랑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있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전혀 부담이 안되는 범위에서 아주 찔끔 남을 도우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로 생색내곤 한다.
아직도 이 청년처럼 자신이 꽤 선한 사람이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허구임을 하나님께서 왜 모르시겠는가?
사도행전에서 빌립보 간수가 사도 바울 앞에서 무릎 꿇고 물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간수는 제대로 질문했다. 그는 선한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 당장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오늘 본문의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심히 근심하고 갔다(눅 18:23).
그러나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그 간수는 예수님을 믿고는 크게 기뻐하였다(행 16:34).
얼마나 대조되는가?
그리고 후에 빌립보를 비롯한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기 소유를 헐어서 힘을 다해서 남을 도왔다(고후 8:1-4).
나도 재산을 바쳐야 하는가를 가지고 고민하지 말라. 억지로 바쳐보았자, 그것은 자기 의이고 교만이 될 뿐이다. 오직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어라. 그리고 영생을 기뻐하라. 그러면 그 믿음이 나를 놀라운 길로 인도할 것이다.
이 훌륭하게 보이는 청년은 아마도 끝내 움켜쥔 손을 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탐욕스럽고 죄인이었던 세리 삭개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내놓고, 손해 입힌 것을 네 배로 갚겠습니다."(눅 19:8). 이것이 바로 믿음의 위력이다.
주 예수님, 주님께서 제 안에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면서 이 믿음이 인도하는 그 삶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