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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23-30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1.20|조회수2,984 목록 댓글 0

■2021-1-20(수)■

 

(마태복음 19장)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묵상/마 19:23-30)

 

◆ 부자는 천국 가기 어렵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23)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은 마음이 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다고 생각하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의 선과 악이 물질의 유무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산주의 사고방식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다루다보면, 부자는 악하고 가난한 자는 착하다는 편견이 완전히 무너진다. 상당수의 부자집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긍정적이고 정직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꽤 있다. 사랑받으며 여유있게 커서 그런 듯 하다. 반면에 가난한 집 아이들은 오히려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많고, 거짓말도 많이 한다. 어려서부터 각박한 환경에서 구박받고 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긍정적인 성품으로 하자면 부자가 더 천국에 가까울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말씀은 부자 청년 이야기 바로 다음에 나온 것이다. 그 부자청년에게 재산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했을 때 큰 근심을 하며 집에 갔다고 했다. 

 

반면에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주님께서 따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마 4:18-22).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부자 청년이 크게 근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심히 큰 부자였다(눅 18:18).

버려야 할 것이 너무 크고 많았던 것이다. 차마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도 없었다. 그 많은 재산이 장점인줄 알았는데, 주님을 따르는데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만일 그 청년이 재산이 없었더라면,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할 때, 부담없이 따랐을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부자가 그 많은 재산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예수님에게서 돌이켜서 쓸쓸하게 세상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그러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 청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느 종족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아구리가 좁은 항아리를 고정시킨 후에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넣어둔다고 한다. 원숭이가 아구리 좁은 곳에 손을 넣고 과일을 움켜쥐면 그 손이 빠지질 않는다. 원숭이는 결코 과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무척 애를 쓰는데, 그 때 원숭이 사냥꾼이 와서 그를 포획한다고 한다. 손을 펴야 사는데, 원숭이는 그것을 못한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주님을 따르는 것에 지장이 있는데도 계속 내 손을 펴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저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으며, 저 부자 청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셨다.

"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

 

이 말씀은 저렇게 움켜진 것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안일한 구원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경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령 부자 삭개오에게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면 과연 그가 예수님을 따랐을까? 아마도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반발했을 것이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그런 요구야 말로 낙타를 바늘귀로 집어넣으라는 요구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집에 오시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이것이 바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주님을 믿으면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광경을 여러번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얻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 직위와 권력과 기회를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고자 나선 자들을 볼 때, 나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다. 나는 형제들이 이런 믿음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그리고 나도 이런 믿음의 세계에서 평생 살기를 원한다. 

 

믿음은 비록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구해야 할 부분이다. 더욱 주님을 잘 믿기 위해서 기도하며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들을 가지려고 해야 한다. 필요하면 금식이라도 하라. 믿음이 최우선이다. 믿음에서 행동이 나온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행동을 요구해봤자, 위선적인 행동과 죄책감 외에는 아무 것도 건질 수 없다.  

 

믿음이 생기는 순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믿음때문이다. 반면에 믿음을 모르면, 결국 율법적이고 메마른 종교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강박적인 사고는 저에게 많은 율법을 만들고 스스로 얽매이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저를 자유롭게 하며, 즐겁게 헌신하게 합니다. 주님, 저로 더 깊은 믿음의 세계를 알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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