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금)■
(마태복음 20장)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묵상/마 20:17-28)
◆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9)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죽기 위해서 태어나셨다.
모두가 살려고 태어났지만, 오로지 사람들을 살리고자 죽기 위해서 태어나신 분은 주님께서 유일하시다.
그의 죽음이 곧 우리들의 생명이 되는 죽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메시야가 되시는 예수께서 애초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실 목적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메시야가 세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메시야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영적인 나라이며, 혈통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 샬로메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20)
세베대의 아들들,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로 와서 절하며 자기 아들 둘을 예수님의 좌우 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여자의 이름은 살로메(15:40)이며, 마리아의 동생(요 19:25)이다. 다시 말해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들이며 살로메는 이모다. 그녀가 아들 둘을 모두 예수님께 헌신하게 했다(눅 8:3)는 것과, 이렇게 찾아와서 절을 하는 것을 보면 자기 언니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잘 듣고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말한 그 메시야라는 것을 확신했다는 증거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이 되시는 분이시다.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고하시는데도 이렇게 찾아와서 요구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으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메시야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열렬 학부모였던 살로메는 며칠 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는 여자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막 15:40).
◆ 야고보와 요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22)
살로메와 그의 두 아들들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할 때 자신있게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것은 고난의 잔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나중에 그 잔을 마셨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당하였고(행 12:2), 요한은 제자 중에서 최후까지 고난받으며 가장 나중에 죽었다.
종종 영광을 상상하며 따른 길이 알고보니 온통 고난과 가시밭 길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종종 그런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나라임을 기억하자.
◆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25,26)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분개했다.
좌우편을 요구하는 것이나, 이것을 보고 분개하는 제자나 모두 오십보 백보다. 아마도 이후에 제자들은 과거의 이런 자신들의 모습이 무척 부끄러웠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눈 앞에 닥쳤는데도 아랑곳 없이 큰 자리를 탐내고 있었던 자신들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그런데 이런 모습들은 세상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과시하려고 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당연시 되는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명령을 하셨다.
"너희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나는 어떠한가?
말씀을 읽어도 내게 적용하기 보다는 비판하는데만 열중하고, 간증은 과장하고 부풀리며, 내 지식을 자랑하고자 장황하며, 사람들에게 칭찬받고자 하는데 열중하지는 않는가? 내 안에도 헌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악한 야망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자.
"너희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이 말씀이 세상적인 야망과 시기로 찌든 마음을 찢고, 회개하게 해야 한다.
◆ 섬기러 오신 주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
그토록 위대하신 주님께서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러 오셨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외워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원칙이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이 마음을 늘 품게 하소서!
하나님의 본체되신 그 분도 섬기러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그의 종이라고 자천하는 자가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대접받으려고 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행세하는 것은 너무나 꼴불견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태운 어린 나귀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마치 자기를 향해 환호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만큼이나 어이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조금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권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은 솔직히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겸손히 섬기자.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다. 으뜸이 되려고 하지 말고, 과장하지 말자.
주님, 으뜸이 되고 싶어하는 세상적인 마음에서 저를 건져주십시오. 자랑하는 입술을 고쳐주십시오.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저를 보호해주십시오. 오직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