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6(화)■
(마태복음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묵상/마 21:12-17)
◆ 성전 정화 - 월요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12)
마태복음에서는 생략되었지만,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입성하시고, 성전을 둘러보신 후에 가셨다가 그 다음날 즉 월요일에 성전정화 작업을 하셨다(막 11:11,15). 이제 십자가의 죽음까지 꼭 4일 남았다.
당시에 성전 뜰에서는 돈 바꾸는 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성인 남자가 되면 성전세 반세겔을 유대 화폐로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로마의 통용 화폐를 유대인의 화폐로 바꾸어주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또한 매매하는 자들은 제사에 사용할 양이나 소를 파는 자들이었을 것이다(요 2:13). 그리고 비둘기도 팔았다. 이것들은 모두 제사에 필요한 희생물들이었다.
본래 성전 뜰은 제사 드릴 사람들이 기도하며 대기하는 곳이며, 화목제물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장사아치들 때문에 완전히 시장바닥처럼 변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예수님의 분노는 거룩한 의분이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었다(요 2:17).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도 한번 있었다(요 2:13-22). 그러나 이들은 바뀌지 않았고, 바꿀 생각도 없었다.
◆ 강도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2)
성전뜰에서 장사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결탁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여러 명분과 나름대로의 설득 논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양을 끌고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며, 돈만 있으면 부담없이 성전에 들러서 제사 드릴 수 있게 되는 시스템, 얼마나 편리한가? 그리고 십일조로 바친 양들은 바로 바로 장사아치 손으로 넘어가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시스템, 얼마나 멋진가?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제사드릴 수 있게 되면 하나님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모두가 윈윈 아닌가? 이런 식으로 만든 거짓 논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면서 이들을 가리켜서 '강도'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강도는 헬라어 '레스테스'로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나오는 강도와 같은 단어다(눅 10:30-35). 한마디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질타의 대상은 단순히 매매하는 자들만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이들을 수하로 부리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소위 사역자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다면, 종교를 이용한 강도로 전락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나 선교사가 되면 안된다. 그 길은 그렇게 걸어가면 안되는 길이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교회를 더럽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하셨다(고전 3:16-17).
오늘날의 성전은 바로 우리들, 곧 교회다(고전 3:16).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다시 언급하지만, 예배당이 아니라 교회, 즉 사람들이다. 교회는 나의 이익의 대상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자.
우리가 종종 빠지는 위선은 진짜 속 마음은 내 이익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는 선교, 목회, 하나님의 일을 들먹인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정말 주님을 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도 스스로 그런 논리에 빠져서 꽤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익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신다.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
◆ 어린아이들의 외침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16)
성전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제의 환호를 기억하며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철부지 아이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어제의 무리들의 환호를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즉 종교권력가들은 예수님이 그 찬양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에 대해서 분노했다(15).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은 절대로 메시야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아이들이 메시야임을 가리키는 말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의 찬양을 오히려 두둔하셨다. 이것은 다윗의 예언이다(시 8:2). 이것까지 성취하고 계신다.
교활한 어른들보다는 순진한 어린아이들이 더 진리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흰색을 흰색이라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무슨 색으로 말해야 자기에게 유리할지를 생각하는 종족이다.
들은 지식은 많아서 이것 저것 아는 것을 늘어놓지만 정작 주님과는 아무런 교제도 없고 그 영혼은 공허한 빈껍데기라면, 결국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대제사장이나 서기관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야단치는 쪽보다 야단맞는 쪽에 더 많이 속해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보다 더 주님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늘 야단치는 쪽에 있으려고 하는 이 건방짐을 언제나 내려놓을 수 있을까?
주님, 종교적으로 포장되어있는 위선을 벗겨주시고, 진실하게 해주십시오. 성도로 시작했다가 강도로 전락하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