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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23-32 / 세리나 창녀보다 더 회개하기가 어려운 자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1.29|조회수1,055 목록 댓글 0

■2021-1-28(목)■

 

(마태복음 21장)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묵상/마 21:23-32)

 

◆ 세리나 창녀보다 더 회개하기가 어려운 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

 

당시 가장 타락한 사람을 대표하는 말이 남자는 세리였고, 여자는 창녀였다. 그 이하는 없다. 하나는 탐욕의 대명사였고, 하나는 음란의 대명사였다.  세리는 십계명에서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는 열 번째 계명을 창녀는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살인범은 감옥에 가서 처벌이라도 받았지만, 세리와 창녀는 드러나도 처벌되지는 않았으며, 사람들과 섞여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특별히 멸시했다. 

 

반면에 대제사장이나 장로는 당시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세리나 창녀가 이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말씀하신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은 진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례 요한이 누구로부터 권세를 받았는지를 되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자신들의 진심을 말하기 보다는 어떤 대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정치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자가 이렇게 정치적인 속물로 전락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런 정치적 속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들이 정치적 속물로 전락했을지라도 그래도 세리나 창녀보다는 더 나은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충격이다. 진실을 잃어버리고, 회개할 줄 모르는 종교지도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난받는 사람들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임을 상기시키셨다.  

 

적어도 세리나 창녀는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회개할 여지가 있었고, 또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지목되어서 이들때문에 신앙적으로 미혹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잘못된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수 많은 신자들을 실족케 할 수 있다. 더구나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신분 때문에 스스로가 의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할 여지가 없다.  

 

사역자들은 은근히 교회에서의 신분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세리나 창녀보다 더 악한 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실을 잃어버린,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목사나 장로나 선교사는 오히려 더 끔찍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평범한 성도였으면 자기 하나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회개하지 않은 자가 종교지도자가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비유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31)

 

오늘 본문에서 어느 사람이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큰 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막상 가지는 않았고,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 하였다가 뉘우치고 갔다고 했다.  순종하는 척 했지만 막상 순종하지 않는 아들이나, 막상 순종은 했지만 말로는 싫다고 했던 아들이나 모두 좋은 아들은 아니다. 그래도 둘째 아들이 더 나은 것은 뉘우치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큰 아들은 바로 대제사장, 장로들이고,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녀를 가리킨다 것을 알 수 있다. 

사족이지만, KJV에서는 두 아들의 역할이 반대로 되어있다. 즉 큰 아들이 싫소이다 하고는 결국은 순종했고, 둘째아들이 가겠습니다하고는 안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KJV보다는 개역개정 성경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말만 잘하고 막상 순종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님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맏아들 과인가 둘째 아들 과인가? 내 양심이 그것을 잘 알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하고 실제로도 순종하는 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제가 정치적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매사에 진실하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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