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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1-14 / 혼인잔치 비유에서 본 이스라엘과 이방인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2.01|조회수351 목록 댓글 0

■2021-1-30(토)■

 

(마태복음 22장)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묵상/마 22:1-14)

 

◆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2)

 

임금의 혼인 잔치는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임금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기를 싫어했다.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하러 갔다. 일상생활이야 무슨 죄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임금의 초청을 거절한 것은 대단히 무례한 것이다. 임금은 존중받아야 할 위치다.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아닌가? 그의 초청을 거절한 것은 한마디로 그 임금의 백성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초청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어느 임금이 이런 백성을 두고 보겠는가? 즉시 군대를 보내서 그런 자들을 멸할 것이다. 

 

도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누구들을 비유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잔치에 초청되었지만 거절했다. 정말 받아들이기만 했으면 복된 약속을 가장 먼저 누릴 수 있었던 자들이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 약속된 수 많은 복된 예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잔치에 참여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백성 수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아도, 오직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사 10:22). 

 

◆ 잔치에 참여한 자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9절)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않자, 임금은 네거리 길에 가서 만나는 대로 아무나 데려오라고 하셨다.  어떤 조건도 달지 않았다. 종들은 비상이 걸렸다. 잔치 자리를 채워야 한다. 

 

종들은 나가서 닥치는 대로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이 비유에서 길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초청된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모든 이방인들이다. 이제 복음의 대상은 유대인으로부터 모든 이방인으로 확장된다.  이 비유는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개의 단어가 매우 흥미롭다. 

 

"만나는대로" - 외모, 혈통, 가문 등의 외적 조건들이 모두 생략되었다. 그저 만나는 대로다!

나는 임금의 이런 결정이 너무나 고맙다. 이런 결정때문에 내가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오, 이것은 진정이다. 나는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감사하고 은혜에 감격한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그들의 행위를 상관하지 않고 초청되었다. 과거는 묻지 않으신다.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고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 오직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이다!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초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리가 남아있자,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올 것을 명령하신다(눅 14:23). 이제는 잔치 자리에 강제로 끌려오는 사람까지 생겼다. 

 

내가 과거에 어느 중학교에 근무할 때 열정적인 어느 선생님이 젊은 교사를 강제로 신우회에 데려왔다. 그 여선생에게 좋은 곳에 가자고 하고는 가방을 빼앗아서 앞장서자 그 여션생은 가방때문에 신우회에 끌려왔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걸 계기로 매주 참석하게 되었으며,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선생은 자신이 예수 믿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었다.  하긴 구원을 얻었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그 후로 수 십년간 충성된 종으로써 주님을 섬기고 있으며, 지금은 우리 선교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다. 

 

 

◆ 예복을 입지 않은 자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12)

 

임금의 잔치에 참여하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무척 무례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옷이 매우 귀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예수님의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가지고 제비 뽑기할 정도였다(마 27:35). 빚쟁이들이 옷을 저당잡을 정도로 옷은 재산 목록 1호였다(출 22:26). 그런데 길거리에서 닥치는대로 초청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복을 입을 수 있었겠는가?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런 질문에는 아무 말도 못하기는 커녕 오히려 할 말이 많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를 우리가 알면 오해가 풀린다.

당시에는 큰 부자나 특히 임금같은 대단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예복을 잔치 자리 입구에서 나누어 주었다. 예복은 각 개인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준비한 것이다. 이 예복을 입음으로써, 세상에 있는 모든 신분들은 모두 가려진다. 모두가 똑같은 예복 속에서 똑같이 존중된다. 

 

그런데 초청된 자들 중에 이 예복을 거절한 자가 있었다. 그는 예복보다는 자기 옷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종종 교인들 중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자기 의, 자기 공로에 더 집착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임금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3)라고 지적된 자들이다. 놀랍게도 이런 자들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강단에서도 자기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예복을 입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거룩함과 진실함을 입어야 한다(고전 1:30).

 

주님,  사람의 외모나 환경이나 출신 등을 따지지 않고 주님의 잔치 자리에 초대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행위나 과거의 죄를 따지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이렇게 놀라운 복과 은혜의 자리에 참석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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