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7(수)■
(마태복음 24장)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묵상/마 24:45-51)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란 어떤 사람인가?
주님께서는 그것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그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다. 한번도 굶기지 않고, 때에 맞게 양식을 공급하는 자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양식을 꼭 '말씀'이라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이 비유를 목사에게 한정하거나 또는 성경교사에게만 한정하면 안된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일꾼된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매 끼니를 꼬박 꼬박 챙겨서 집 식구 중에 한사람도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어려운가? 별로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일에 '지혜로운', '충성된', '복'이란 단어까지 써가면서 칭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주일정도 이렇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십 년, 이십 년, 심지어 평생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양식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꾸준히 일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자란, 자신이 맡은 일을 보다 좋은 쪽으로 발전이 되도록 머리를 쓰며 노심초사하는 자다.
충성된 자란, 인내하며 끝까지 해내는 자다.
얼마나 사역이 화려한가가 기준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가 기준이 아니다. 그것이 많든 적든, 그것이 화려하든 소박하든 맡은 일에 끝까지 지혜와 충성을 다하는 것이 기준이다.
주인이 올 때 그에게 모든 소유를 맡긴다는 말씀을 나는 두가지로 해석하고 싶다. 즉 그의 사역이 점점 확장될 것이며, 그리고 천국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가 향유하게 될 것이다.
◆ 악한 종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49)
악한 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악한 종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동료들을 때린다는 것은 그가 월권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결코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는 것은 이미 그가 자신의 할 일을 버리고 자기 쾌락, 자기 이익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가 쪼개지든 말든,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든 말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군림하고, 지배하며, 그들의 섬김을 즐긴다.
악한 종은 목사나 장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 사람들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집사도 될 수 있고, 구역장도 될 수 있다. 이들의 봉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형제들을 돌아보기 보다는 오로지 목사의 인정만을 받기 위해 충성하는 자들은 모두 해당될 것이다.
목사의 비리를 지적했다가 교회에서 쫓겨난 자들이 있다. 누가 교회를 망친 자들인가? 쫓겨난 자들인가 아니면 쫓아낸 자인가? 말할 것도 없다. 비리를 행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지적한 자들을 쫓아낸 자들이다. 이들은 동료를 때린 악한 종이다. 그리고 이런 자를 동조한 자들이 모두 술친구와 함께 먹고 마신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그런 악한 종들을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51)
이것은 비유에서 출발해서 실제로 마무리 된 것이다.
신자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지만, 특히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고 교회를 망치는 죄는 절대로 지면 안된다. 그런 죄를 짓고 살았다면 천국에 들어갈 생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는 매를 맞고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것임을 경고하셨다(마 25:30).
우리는 이 비유에서 구원론을 들먹이면 안된다. 이 비유를 이용해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반대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해도 저 악한 종처럼 맞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약아서 신학적 논리를 멋대로 적용한다. 사실 구원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다. 왕년의 믿음이 아니라 현재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 말씀을 칼빈주의로 해석하든, 알미니안주의로 해석하든 관심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악한 종들은 반드시 벌을 받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겸손하고 충성되게 시작한다. 그러나 점점 사역이 확대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면서 타락한다. 그들은 거짓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돌아올 수없는 강을 건넌다.
평생을 한 길을 걸으면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을 거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길이 꾸불꾸불했어도 이제 남은 길은 제대로 걷자. 주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다. 내가 방향을 제대로 잡을 때 주님은 나의 과거를 잊으시는 분이시다(겔 33:16).
주님, 과거에 무엇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내세우고 지배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지혜롭고 충성된 종으로서 남은 인생을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