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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4장19-28 / 바울이 돌에 맞다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5.01|조회수1,758 목록 댓글 0

■2021-5-1(토)■

 

(사도행전 14장)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묵상/행 14:19-28)

 

◆ 바울이 돌에 맞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19)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발 장애인을 고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오해하고 제사 지내겠다고 할 정도로 추앙되었다. 그런데 그 열기가 식기도 전에 이고니온에서 온 무리들이 바울을 돌로 쳤다. 돌에 맞으면 말도 못 한 고통이 수반된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존감이 깨질 수 있다. 바울은 요샛말로 짧은 시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그런데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있었는데, 바울만 돌에 맞은 것을 보니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 같다. 

바울만 돌에 맞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상상해본다.

 

바울은 과거에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던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돌에 맞으면서 스데반의 심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는데, 바울은 역지사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 나는 종종 이런 역지사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회개하고 겸손을 배운다. 이런 경험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길은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서운 고난도 따른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고난받는 것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런데 그 모든 고난의 첫 시작이 오늘 돌에 맞는 것이었다. 이후로 바울은 채찍에 맞고 몽둥이로 맞고 감옥에 갇히고, 헐벗고 굶주리는 상황에 종종 처하게 된다.  

 

사람들은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다. 그렇게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린 자가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 바울은 그대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셨다. 루스드라의 발 장애인이 일어난 것보다 더한 기적이다. 

 

앞으로 이런 길이 계속 될 텐데도 여전히 주님을 섬길 것인가? 

바울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예'라고 대답한다. 

돌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가 죽거나 낙심하지 않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자신을 돌로 친 사람들이 있는 이고니온에 다시 가서 제자들의 믿음을 튼튼하게 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 11:38). 

우리는 이렇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된 자들이다.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22)

 

바울이 당하는 무서운 고난을 보고도 과연 신자들이 계속 주님께 붙어있을까?

놀랍게도 여전히 그들이 믿음에 있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기쁨과 확신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바울은 제자들을 찾아가서 마음을 굳게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에서 떠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을 말했다. 이 말은 말세를 당한 우리도 새겨야 할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어떤 환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어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나는 그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난을 싫어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분위기가 되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회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바로 다른 교회로 옮긴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종교적 취미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환난까지 겪으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인지를 안다. 이들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 장로들을 세우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23)

 

바울은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교회의 장로들을 세웠다. 

바울은 자신의 조직을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회사와 다르며 세상의 어떤 조직과도 다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사람에게 속해있으며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조직도 몰락하거나 방향이 바뀐다. 

그러나 교회는 철저하게 주님이 주인 되시기 때문에 방향이 바뀔 수도 가치가 달라질 수도 없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수장이 있다. 심지어 신학교도, 선교회도 조직이다. 모든 조직은 인간 수장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다르다. 오직 주님께서만이 수장이시다. 

 

사장이 없고 부장들만 있는 그런 회사가 존재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회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수장이시며, 성령께서 각 사람을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장로는 한 명이면 곤란하다. 그러면 그가 수장이 될 수 있고, 교회는 세상조직으로 전락해버릴 우려가 있다. 그에 의해 좌우되는 교회는 결국 엉뚱한 곳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권한을 가진 장로가 두 명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심을 상기시켜야 한다. 칼빈이 주장한 장로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장로교회인데, 오늘날 장로교회는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장로란 목사를 보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울의 이런 조치는 참으로 적절하여서 바울이 오랫동안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어도 그들은 튼튼하게 세워져 갔다. 성령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기 때문이다. 

 

바울의 일차 전도 여행은 이것으로 마치고 그는 안디옥교회로 돌아가서 주님의 제자들과 오래 함께 있었다. 

 

주님, 주님을 섬기는 길에는 영광과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 용기와 담대함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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