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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장8-20 /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5.18|조회수2,187 목록 댓글 0

■2021-5-18(화)■

 

(사도행전 19장)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묵상/행 19:8-20)

 

◆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함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9)

 

바울은 삼 개월을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으나 일부 사람들이 무리 앞에서 비방하자, 그들을 떠났다. 비방하기 위해 토론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선거 시에 서로 토론해서 상대 진영이 설득당한 적이 있는가? 없다. 오직 이기기 위한 싸움뿐이다. 우리는 그런 소모적인 토론은 지양해야 한다. 진리를 위한 토론이 아니라면 우리는 바울처럼 과감히 떠나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했다.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과 제자들을 분리했다.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무려 2년간이나 제자들을 가르쳤다.  두란노는 사람 이름이다. 두란노 서원이란 아마도 그가 운영하던 학교였던 것 같다.

 

◆ 각종 능력을 행하게 하심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11)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자에게 대면 나을 정도였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이 진리임을 확실하게 인증하시기 위해서다.  복음은 사람이 만든 이론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확실한 진리다.

 

바울의 희한한 능력 때문에 그는 에베소에서 신처럼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교만해진 흔적이 보이지 않음은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제대로 안다면 교만해질 수5가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안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을 권면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이다(빌 2:-8).

그러나 주님을 잠깐 잊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예외 없이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이 스며들어온다. 아,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이 얼마나 잘난 체로 점철되어 있는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칭찬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진리를 전하는 중에도 상대방의 상태를 살피지 않고 내 깨달음만 늘어놓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것은 영혼 사랑이 아니라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런 교만의 유혹에서 보호하시기 위해서 질병을 하나 주셨고 그것을 고쳐주지 않으셨다. 남의 병을 고치는 바울이 정작 자기 병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 은혜라고 말씀하셨다(고전 12:7-9)

 

 

◆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15)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 기적을 행하자, 그를 모방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오늘 본문에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비슷한 일을 행하였다. 그러나 악귀는 그들을 제압했다.

 

예수의 이름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누가 내 허락 없이 내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면 내버려 두겠는가?

주님께서도 아무나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라고 하셨고,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라고 하셨다. 이 약속은 오로지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제자가 아닌 자들은 이 약속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우리가 기도 끝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이러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이런 놀라운 약속을 우리가 왜 사용하지 않겠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죄와 싸우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라. 예수의 이름으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 예수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 복된 이름이다.

 

 

◆ 에베소에서의 부흥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서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19)

 

비법을 배워서 바울처럼 해보려던 자들이 이것은 비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문제임을 알고 회개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마술책을 모아서 사람들 앞에서 불태웠다. 그 가격이 은 오만이었다. 은 한 개가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노동자 5만 명의 품삯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노동자 하루 품삯을 10만 원으로 잡아서 계산한다면 무려 50억 원어치다.  그들은 그것을 중고로 팔지 않았다. 모두 불태웠다. 그들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옳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것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냥 지식과 교리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가치관이 되고 인생관이 되었다.

 

과거에 학생 수련회가 마친 후에 한 여학생이 큰 은혜를 받고는 집에 가서 그동안 용돈을 아끼면서 사두었던 로큰롤 노래 시디 수십장을 마당에 모아 놓고 망치로 깨버렸다.  다시 돌아갈 다리를 부수어버린 것이다. 이런 것이 신앙적 결단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집에 여전히 마술책과 같은 것을 놔두고 만지작거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기쁨을 모르고 살고 있다.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왜 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는데 평화가 없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교회에 들어오고, 에베소 교회는 아주 분명하게 진리에 서 있는 든든한 교회가 되었다. 나는 이 시대에서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는 것을 보고 싶다. 

 

오, 주님 나의 생활과 우리 교회에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게 해주십시오. 말씀이 적용되게 하시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구체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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