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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장13-15 /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삶의 방식

작성자최야곱|작성시간21.09.29|조회수1,310 목록 댓글 0

■2021-9-29(수)■

 

(골로새서 2장)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묵상/골 2:13-15)

 

◆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육체의 무할례란 할례받지 못한 사람, 곧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무할례자란 율법 없이 사는 언약 밖의 백성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약속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자부하는 유대인에게 이방인이란 소망 없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바울은 '너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골로새 성도들이 유대인들과 구별된 이방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을 내미셨고, 거듭나게 하셨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너희'에서 다시 '우리'라는 말로 돌아온다.

'우리'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

이방인만 죄로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죄로 죽어있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 (롬 3:23-25)

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음을 깨닫는 자는 복 있을진저!

 

 

◆ 새로운 방식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법조문으로 쓴 증서'

이것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이루어진 계약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이며 신앙하는 방식이었다.

최초에는 돌판에 새겼고, 후에는 가죽과 종이에 기록되었다.

 

제대로 지키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반면에 언제 어디서든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아 소멸할 수밖에 없는 계약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제하여 버리셨다고 선언한다. 대단히 충격적인 선언이다. 이것은 이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대하시겠다는 선언이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란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었다. 다른 길은 없다. 노력이 부족하면 더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태산처럼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율법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이라고 선언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죄로 점철된 역사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이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의로운 욥조차도 결국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죄인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구약의 메시지다.

 

율법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인간이 죄인이며 심판받아야 할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롬 3:19).

오, 이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율법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자신의 결심 부족을 탓하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설교를 들을 때나 혹은 수련회 같은 곳에 참석해서는 새롭게 결심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만만해서 돌아온다.  얼굴에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그 빛은 꺼진다. 사람들은 모두 결심 중독자들이다. 결심은 대단하지만, 막상 열매는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아무도 그것으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다! (갈 2:16)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애쓰고 있다.

 

율법을 지키는 방식으로 신앙 생활하면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는커녕 우리를 더욱 죄책감으로 몰아넣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든다. 늘 부족하며 죄스러울 뿐이다. 반면에 조금 잘 한 것 같으면 즉시 교만해지고, 우쭐댄다. 율법으로 살면 그는 점점 메마르고 고집이 쎄진다(갈 5:4). 사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두 율법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도 율법이 익숙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런 법조문을 십자가에서 제거해버리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시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이 방식을 배우지 못하면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 곧 믿음의 방식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그냥 사도신경을 외우고 교리를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였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했으며,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받게 했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체험해본 사람은 안다.

 

믿음은 십자가에서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배우게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 증오를 사랑으로, 원수를 은혜로 갚으셨다. 믿음으로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남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죽는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악한 통치자와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주님의 개선 행진에 참여하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세상 권세를 잡은 마귀에게 시달릴 필요가 없다. 마귀는 여전히 자신이 채권자인 것처럼 독촉하지만, 어림도 없다.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의 백성이다.

 

이런 위대한 승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신다(마 21:21).

 

나는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

이 믿음 안에서 나는 매일 트집 잡는 율법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평화를 가질 수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정욕을 이길 수 있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더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셨다. 믿음 안에서 하늘의 소망을 갖고, 이 세상 욕심을 벗어버릴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거스르는 법조문을 제거하신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신앙생활 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성령은 살리는 것이다. (고후 3:6)

십자가를 묵상하고, 예수님을 머리로 붙들어라.

이것이 모호하고 어렵다면 생각을 내려놓고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구하라.

 

주님,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를 이 개선의 행진에 참여케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진정한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실행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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