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에게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묵상)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18)
이전 일이란 16, 17절에 언급된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던 일이다.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은 그것과 비교될 수 없는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오히려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어 버릴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건인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19)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면서 홍해를 가르시고, 불과 구름으로 인도하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이 약속은 짧게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탈출시키는 일을 의미하지만, 사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건은 출애굽사건에 비해서는 너무나 미미해 보인다.
이 예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사건을 넘어서서 더 위대한 일을 가리키고 있다.
곧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역이다. 이것은 인류가 겪었던 모든 사건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사건이다.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19)
이것은 당장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었던 백성을 광야와 사막을 거쳐서 이스라엘로 무사히 복귀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포함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더 중요한 실체를 가리키고 있다. 곧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수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 품에 돌아오게 되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20절에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들짐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들짐승이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나운 승냥이와 멍청한 타조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조차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놀라운 사건이 미래에 일어난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시자,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마 15:27)
신약에서 수 많은 이방인들을 고쳐주셨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새삼스럽게 이방인이 '개'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치유를 거부하신 것은 늘 해석을 곤란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에서 승냥이와 타조를 이방인으로 간주한다면, 주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22)
'그러나'라는 말이 매우 안타까운 말이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25) 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냉담했고, 복음을 거절했다.
결국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향하였고 넘치는 은혜는 믿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놀랍다. 우리는 신약에서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광야에서 배회하는 사나운 승냥이와 어리석은 타조와 같은 저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껏 제가 산 것이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저를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대구평신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