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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밝아야지만 귀도 밝아야 쓴다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2.12.29|조회수20 목록 댓글 0

눈도 밝아야지만 귀도 밝아야 쓴다/김문억

 

 

시를 쓰자면 눈이 밝아야 하지만 귀도 밝아야 한다

남이 하는 말 중에는 얼마든지 시의 씨앗이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회 행사장에서 습작을 하는 어떤 사람과 콩 심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고향 농부들은 콩 심는 두덩을 만들어 놓고 바른 발뒤꿈치로 쿵 밟아서 구덩이를 만든 뒤에 콩알을 몇 개 떨어뜨리고 나가면서 왼발로 흙을 쓰윽 쓸어 덮는 것으로 콩 심기를 계속 해 나간다. 호미나 괭이 같은 어떤 농기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냥 서서 작업을 해도 된다는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친구 曰!

콩알을 세 개 씩 심는데 농부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콩 심기를 한다는 것이다.

‘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고 한 알은 내가 먹고’

콩 심기를 하는 일종의 농부가라고나 할까 그렇게 계속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를 주문하면서 콩 심기를 계속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농경사회에서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나는 새와 땅 속에서 기는 벌레까지도 걱정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것이다. 어쩌면 가을에 수확이 부실한 추수를 하면서도 새가 날아와서 쪼아 먹고 땅 속 벌레가 쪼아 먹고 나머지를 내가 먹는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가난을 극복 해 왔는지 모른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것 말고 또 있다.

그 친구는 그 이야기를 지나치는 말로 하고 있지만 내 귀에는 아주 좋은 시조 한 수가 떠올랐던 것이다.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서산에 올라서 있는 지는 해가 콩을 심는 농부를 바라보면서 비식 웃고 있었다‘.

시치미 뚝 떼고 그 친구를 향해서 내가 중얼거렸다.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별레가 먹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나는 내가 먹고를 뒤따라서 중얼거린다

내가 대답하기를

“하나는 내가 먹고는 쓰면 안 되지 그러면 시가 안 되지”

거기까지만 이야기 하고 자리를 파했다

그 뒤에 그 친구가 콩 심기 이야기를 시조로 만들었는지는 보거나 들은 적이 없지만

나 역시 들은 이야기지만 내 것이라고 챙기지는 않았다

어쩌면 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 한 말이라면 얼씨구나 좋다 하고 내가 얼른 받아먹었을지 모르지만 습작생이 하는 말을 주워 먹기는 내 위신에 쪽팔리는 일이어서 그 친구에게 여지를 두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이야기가 시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까지만 기술해야지

하나는 내가 먹고까지 표현을 한다면 생략과 응축을 생명으로 하는 시조문학의 단수 쓰기에서

생명력을 잃는 격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하나는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그것이야 말로 생략의 언어 속에 여운으로 들어 있는 독자 몫이 될 것이다

독자는 그 시를 읽으면서 콩 세 알 중에 하나는 날짐승이 먹고 하나는 땅 벌레가 먹고 정작 콩을 심는 농부는 하나만 얻어먹는 다는 숭고한 마음을 읽을 것이다. 때문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연출가 지는 태양이 빙그레 웃으면서 황금빛 타는 물결로 농부의 앞자락을 물들여 주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말 한 마디 새와 벌레 사람이 같이 어울리는 실로 天 地 人 이라고 하는 깊은 철학까지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조쓰기는 부지런하되 욕심은 버려야지 너무 많은 것을 담는다면 무거운 것을 대접받는 독자도 벅차다.

 

 

 

농부가 중얼거리면서 콩 심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석양이 알아듣고서 황금빛을 쏘고 있다.

 

어쩌면 이 정도라도 시조 한 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문억의 시인학교 습작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오늘의 이야기다

2022. 12. 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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