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김문억
배고플수록 몸이 무겁고 먹을수록 몸이 가벼운
가방 속에서는 늘 밥 먹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회용 내장 몇 개와 조립식 보조 뼈마디와 예비 이빨을 꺼내 쓰다가 보면
설거지를 하지 못한 지저분한 내 가방 속엔
여러 가지 공구들이 충혈 된 눈동자와 사정없이 부딪치고
밥값을 예비하여 생각을 저축해 둔 통장 속엔 가끔 돈을 살 수 있는 책도 몇 권 들어 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맹수 한 마리 들어 있다.
김문억 시집<지독한 시2008파루>중에서
가방은 물론 시인의 가방이지만 일반인의 가방일 수도 있다
시 창작을 하는 시인이 들고 다니는 가방 안은 없는 시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형이상학적 상상의
고민이 가득 들어 있다
가방 안에는 수시로 가져다가 써야하는 정제되지 않은 낱말의 어지러운 공구가 들어 있다. 다시 말을 더 한다면 그 가방은
나의 머리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돈이 있어야 책을 살수가 있겠지만 돈을 살 수 있는 책이 몇 권 들어 있다는 역설적인 서술로 知적인 권위와 창작의 고통과 시적 효과를 꾀하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고픈 맹수는 물론 작가 자신이다
전에 같이 동인활동을 하던 무리 속에는 적지 않은 자유시인이 들어 있었고
시조를 쓰는 나와는 늘 시적 담론이 무성하면서도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있었다.
가방과 같은 표현이 잘 못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표현은 내가 지향하는 길이 아니다
어떻게 쓰면 쉽고 독자와 교통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늘 과제였기 때문이다
못 쓰는 것이 아니고 안 쓰는 것뿐이라는 나의 내면 의식을 한 번쯤 표출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시는 솔직히 조금은 의식적으로 써 본 작품이다
내 작품 중에는 가끔 이런 시조가 나오는데 사뭇 의식적으로 쓰는 글이다
시에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난해시가 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서 냄새를 맛 보면 안 통할 것도 없다
지금 다시 읽어 보면 독자와 소통이 안 될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육사의 말씀처럼
아무나 아는 시
아무나 못 쓰는 시를 쓰고 싶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 시의 최고 멋스러운 구절 아리랑 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