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꽃 읽기/김문억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귄태웅의「감자 꽃」전문- 목수가 집을 지을 때 대패로 잘 다듬어서 올린 매끈한 대들보 같이 군 말 한 글자 없이 깔끔한 시다 별난 이야기 같지도 않은 지극히 당연한 동시 한 편이 왜 읽으면서 울컥 목울대가 저려오는가 감자 꽃은 우리말 기본 가락 4음보를 살린 동시 노랫말이다 평생 시조만 써온 나로서는 읽는 맛이 입에 척척 붙는다 이 시는 4줄 36자로 된 아주 짧은 동시지만 울림의 진동과 파장은 매우 크다 어찌 보면 이 시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실적인 이야기 같지만 의미를 넣어서 읽으면 숨어있는 그 뜻은 더욱 깊고도 넓다 권 시인은 왜 농촌에 피는 그 많은 꽃 중에서 하필 감자 꽃을 시의 소재로 삼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순박하고 애잔한 꽃빛깔을 갖고 피는 꽃이 감자 꽃이다 감자 맛의 선입견 때문인지 꽃빛마저 진하고 아리다 배고픈 시절 주식의 하나였던 감자를 얻을 수 있는 꽃이어서 바라보는 빛깔이나 모양이 그리 처연했던 꽃이다 감자 꽃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고 누이를 생각하는 그리움이 있었다 감자 꽃을 보면 자주색 흰색 옷고름이 보인다 농민과 서민의 얼굴이었던 감자 꽃을 시의 소재로 간택한 이유다 감자 꽃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감자는 깜깜한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실적 구분지區分肢(이분법)를 설정해 놓고 있다 밝고 어둠이라는 명암 관계를 큰 밑그림으로 놓고 있다 낮과 밤, 빛과 그림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결국은 해방의 염원 같은 것이다 꽃과 감자는 한 줄기 한통속이다 줄기만 당기면 따라 올라오는 것이 감자다 감자 눈을 심으면 감자 싹이 자란다 그 눈빛은 아리고 맵다 그 싹에서 자란 감자 줄기를 따라가면 또 감자를 만난다 그러므로 감자꽃과 감자의 DNA는 똑같을 수밖에 없고 속일 수 없는 같은 핏줄이다 즉 유구한 역사의 민족정기까지 포함해서 같이 읽어 주어야 한다 이 시에 있어서의 핵심은 ‘파보나 마나’ 라고 하는 부사구가 갖는 힘찬 의미에 있다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못할 때 갖는 아이러니를 총체적으로 비유하는 은유의 알레고리다 「감자 꽃」은 사실을 말하고 표현하지 못하던 시대에 대한 저항적 외침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일본 유학까지 한 분이 생각한 바 있어서 어린이나 어른이나 조선민족이라면 읽고 노래하는 중에 민족혼을 불러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와세다 재학시절에 독서회를 만들었다가 치도곤을 당한 것 역시 책읽기의 위장 속에 민족혼을 불사르고 싶었으리라 이 시는 아주 쉬운 이야기의 동시라고 하지만 싹수를 보면 결과를 짐작 할 수 있다는 역사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만유의 진리와 같이하는 민족의 염원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 땅에 심으면 일본감자 조선 땅에 심으면 조선감자가 빤한 이치인데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하얀 꽃 피운 감자를 자주감자라고 우겨대는 그네들에게 붓칼을 들이댔던 것이다 감상글을 쓰는 필자도 지금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일제치하에서 이 시를 써야했던 귄 시인은 얼마나 가슴이 뛰고 억울했을까 속상하던 시대에 살았던 속병으로 해방이 되자 젊은 나이에 운명을 하셨으니 오호라 통재로다! 어쩌다보니 뒤늦게 이 시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이토록 짧은 시의 근본을 지켜가면서 파도치는 감동을 유발할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며칠 있으면 달섬문학회에서 충주지방으로 문학기행을 가기로 했다 그 곳에 가면 권 시인의 「감자 꽃」시비가 있다고 한다벌써부터 그 분의 체취가 느껴진다 우륵의 가야금 탄주 소리가 울려오는 탄금대로 가서 권시인 곁에 머물고 싶다 김문억 산문 집<스트리킹 하는 시인2014파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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