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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속에 있었다.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3.28|조회수27 목록 댓글 1
포탄 속에 있었다.
                                        김문억




청남대 가는 관광버스를 탔다
포탄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다
언젠가 미국 우주선이 발사를 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하여 많은 우주인이 공중 산화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탄 관광차도 그런 화약고였다
말이 땅 위에서 달리는 자동차지 버스 꽁무니에서 불길이 활활 타고 있는 듯 했다. 로켓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빠르고 그렇게 펄펄 끓고 있었다.
이대로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어디선가 쾅 폭발할 것 같았다. 아니 폭발을 할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듯 했다
안전띠를 조였다
그래도 나는 그런 장렬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 내려와서 이 글을 쓴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여행을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 간 것이 실수였다
더구나 청남대를 만들어 놓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가기 싫은 곳이었는데 인정에 끌려서 따라 갔다가 혼비백산 했다
날씨는 쾌청하고 가을은 깊다
아! 가을이라고 창 밖을 한 번 내다 보면서 정취에 젖어 볼만도 하련만
출발과 동시에 커튼은 내려치고 고성능 메들리 음악이 콩콩 내려 찧는데 따라서 노인들도 스카이 콩콩으로 내려 빻기 시작 했다. 저것이 막 춤이라는 것인가. 그 춤을 종일 봤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춤 축에 들 수 없는 발 구르기의 광 끼로 밖에는 달리 표현 할 수가 없다.
차는 이내 고속 길로 들어서자마자 때리고 부수는 광란의 음악이 계속 되면서 너울거리는 체 머리만 복도에 가득 출렁대기 시작했다
운전석 위에 매달린 티.비 화면에서는 배꼽과 허리 살점이 살짝살짝 드러나는 무희들이 오르다가 떨어진 이무기처럼 꿈틀거리면서 자반뒤집기를 하는가 하면 가수들은 연신 온몸으로 빠른 박자의 노래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달아나는 포탄 속에서는 무희와 가수와 버스 복도에 가득 찬 칠십 대의 객석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마이클 잭슨 공연이 이럴까 싶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가을 풍경이 무대 배경이 되어 빠르게 흘러갔다
어떻게 오늘 하루를 이 속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꼬?
흔드는 것은 배내병신 이라서 글러먹은 것이고 눈이라도 부지런히 굴리면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관객 입장에서 앉아 있었다. 내릴 수도 없고 탈출할 수도 없이 갖혀버린 꼴이 되었다. 강사도 꼭 가야 한다면서 춤은 추지 않는다는 문학반 반장의 거짓 유도에 걸려 든 셈이다.


역시 청남대도 수 천 수만의 할머니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시큰둥하고 있는 나로서는 대통령이 있던 집을 볼 이유가 없었다.
산책길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데 관광객들의 대통령에 대한 일화로 시끄럽다
키가 크지 않으면서 둥글게 자라는 반송 이라는 소나무가 있었다. 대통령 씨리즈 중에서 언제나 '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로 유명한 그 대통령이 자기네 집으로 삼십여 그루를 옮겨 갔다고 한다. 
대통령이 대청댐에 낚대를 드리고 앉아 있으면 아부하는 졸개들이 몰래 물속으로 들어가서 산고기를 낚시 바늘에 꿰어 주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과정된 허풍선이 같고 반송 이야기는 진짜 같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더욱 힘이 붙었는지 제 맘대로 펄펄 뛰어 달아났다
몇몇 할머니들은 벌써 3-4 시간을 뛰는 중이다.
꼬리 잡힌 물뱀처럼 이리저리 체 머리를 내두르면서 발바닥에 건전지를 낀 것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어떤 할머니는 마치 경련을 일으키듯 종아리 따로 장딴지 따로 허리 따로 가슴 따로 얼굴 따로 버르르 떨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학질이 온 듯 했고 귀신이 든 듯 했다. 별난 기술이었다.
어디서 배웠을까 그 세대에는 있지도 않던 춤이었다.
갑자기 차에서 경보음이 울리면 연습도 안 했는데 일제히 복도에 주저앉는다.
경찰차가 나타났다는 신호인데 사실은 연습이다. 주로 휴게실에 들어갈 때 연습 삼아 울려 보는 것이다 .다급한 김에 모르는 할아버지 무릎 위로 사정없이 엎어져 오는 할머니도 있고 어떤 할머니는 동산만한 궁둥이를 쳐들고 꿩아리처럼 의자 밑으로 머리를 박으려고 애를 쓴다 자신이 보지 못하면 숨은 것으로 치는가 보다
갑자기 생긴 일이라서 자신도 모르는 중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듯 했다
역시 왜정세대 6.25 세대들이라서 싸이렌 경고에 숨는 것만큼은 이골이 생겼는가.
갑자기 차 안은 웃음 바다가 된다.


그렇게 펄펄 뛰던 할머니들이 화장실을 향해서 걷는 폼이 너무나 초라하다.
어깨가 낙타처럼 구부정하게 휘었는가 하면 하체가 벌어져서 침팬지처럼 어그적거리고 있다
그런 할머니들이 종일 콩콩 빻고 있는 것인데 도대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모두 꼬부랑 깽깽 희극배우였다.
限일까 신명일까. ㅉㅉ 희극적인 그 뒷모습은 편한 중에 서글프다.


차는 이내 문의를 벗어나서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는 해는 노곤해서 드러누워 있는데 할머니들의 뜀뛰기는 아직도 솟는 해와 다름없다. 마치 오늘을 살고 나면 인생 끝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어스름 녘이었다. 미호천에서 먹이를 잡던 철새들이 펄펄 뛰면서 날아가는 우리 버스를 넋이 빠져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놈은 날개를 활짝 펴서 홰를 치며 환영하고 있었다.
청동오리 떼에 쫓겨 달아나던 피라미 떼도 콩콩 뛰면서 달아나는 관광 포탄을 올려다보느라 허옇게 눈을 까뒤집는 바람에 사팔뜨기가 되어 있었다.
오는 길 가는 길에 기사님을 위한 박수가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릴 수 없이 반복 되었다
내려올 때에 이미 걸쭉한 목소리의 할머니 한 분이 올 가을 고추 농사가 흉작이라면서 버스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돈 바구니가 한 바퀴 돌고 나면 기사님은 까무러치는 음악으로 답례를 했고 할머니들은 기절초풍으로 응답했다
그럴 때마다 공포와 전율이 나를 옥조여 왔다. 나로서는 처음 격는 일이었다.


무엇이 우리 할머니들을 저리 신명 나게 한 것일까 가라앉아 있던 바람을 깨워 낸 것일까
본디 신명이 많은 민족이었는데 억압으로 죽어 있던 것인가. 아니면 빼앗긴 청춘에 대한 회한인가
무엇보다 저토록 즐거운 소풍 길에 같이 뛰어주지 못하고 종일 샛님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너무 미안했다. 끼지 말아야 할 자리인데 쌀가마에 뉘처럼 보기 흉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한 할머니들은 입 싹 씻고 시치미 떼고 각각 집으로 돌아갔다
또 한 번 떠나자는 것 잊지 않고.
2009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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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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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ngelcrack | 작성시간 23.03.29 한 많은 한민족의
    한 단면을 보셨네요.

    흥이 많은 우리였다지요.

    한 3개월 펑 뚫린 마음으로
    살아들 가실 겁니다. ㅎㅎㅎ

    정신적 스트레스 싸 - - 악
    육체적 울혈도....싸 - - 악 !!!

    일만년 역사가 이어지는
    한 이유일듯도 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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