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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이야기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5.07|조회수27 목록 댓글 0
남편 이야기/김문억




습작생 여러분에게 남편이라는 글감을 제시하고 보니 남편 노릇을 하지 못 하고 늘 싸움만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시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마누라님과 싸움이 생기고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살게 된 까닭으로 나는 문단의 생리라고 할까 환경이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를 얼른 알게 되었고 나 또한 타고난 성격 때문에 이름 내고 얼굴 파는 소위 말하는 문단 생활이라는 것은 별로였습니다. 글쓰기는 어차피 혼자서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빨리 했습니다. 때문에 월급봉투는 한 푼 축내지 않고 또박또박 갖다가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왜 내가 추구하는 문학을 못 하게 하느냐는 것이 나의 항변이었지요. 그 얘기 다 하려면 추미애 말마따나 소설을 써야 할 판이어서 각설하고.--
그날도 대판 쌈박질을 하고 집에서 나왔지요. 일단은 집에서 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누라님과 다투고 나면 일단은 사람이 무척 외로워집니다.
불식간에 나온 몸이라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은 동네를 배회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분이 조금씩 식어 내립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를 만나서 속 타는 마음을 달래고 싶어집니다.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극단적인 마음의 갈증이 심할 때 비로소 지금 내가 만나서 속마음을 털고 술이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짚어 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보면 내가 진정으로 속맘까지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알게 됩니다. 의외로 몇 명 안으로 좁아집니다. --그 놈은 남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는 습관이 있고 --그 놈은 무엇이고 낙천주의고 --그 여류는 남편이 같이 있어 나올 수가 없고 --그 친구는 너무 멀리 있어 만나게 된다 해도 내 분이 다 풀린 뒤에나 만날 것 같고. --그 동서는 너무 멀리 살기도 하지만 내 속말을 다 털어놓게 되면 자칫 마누라를 통해 즈 언니에게 들어 갈 것도 같고. ---
당장 누군가를 좀 만나서 속 시원한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에라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가서 술을 한 병 시키고 보니 혼자서 술을 따른다는 모양이 영 아닌 것 같고 --문득 참으로 문득 이것이 무슨 마음의 요술 변덕이냐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만누라님 뿐이로다. 에헤라 디야 주책인지 미약한 것인지 기어코 마누라님에게 전화를 한다. 혹여 핀잔이라도 준다면 그냥 혼자라도 끓는 죽을 삭히고 가려고 했는데 어라?
거기가 어디냐고 한다. 석관초등학교 건너편이라고 했더니 글쎄 마누라님이 떫은 풋살구를 씹은 암코냉이 상을 하고 와서는 덜컥 의자에 앉으면서
“ 왜 불러냈어?”
와드득! 빠드득! 뻐드랑니빨 어름 깨무는 소리를 던지면서 얼래? 소주잔을 쓱 내 앞으로 내미는 것이네요 글쎄! 깨지고 갈라지며 부딪치던 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할망구 녹두죽 먹는 소리로 자자들었지요 --그 다음은 다 기억나지 않고 아무튼 조금 취한 몸으로 둘이서 조용히 들어와서 잤어요.


내가 잘못 한 일은 성격이 너무 급해서 참지를 못 한 일입니다. 그 때 마다 마다 마다 좀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좀 더 참고 밖으로 피하지 못 한 일이 지금은 많이 후회를 합니다.
싸우고 나서 극심한 외로움을 느껴도 결국은 마누라님을 찾았다는 현실에서 나는 나에게 지고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심사는 칼로 물 베기 이상으로 참으로 야릇한 일이었지요
‘남자는 남자끼리는 싸워도 여자하고는 싸우는 것이 아니야 임마’
애들이 어릴 때 큰 놈이 제 여동생을 자꾸 건드려서 울리면 집안이 시끄러운 때 조용히 아들을 불러서 내가 이른 말이다
나는 그렇게 실천을 하지 못 했다.


의정부로 이사를 하고도 싸움은 그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그런 제안을 합디다
이제는 나를 놔 주고 친구처럼 그냥 살자고
듣는 나는 반가운 소리지만 무덤덤 표정으로 또 한 고비를 넘겼지요
세월도 많이 갔고 머리카락도 움큼 빠지는 때였습니다.
시집을 발간해도 만져 보지도 않던 사람이 어느 날 미장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스트리킹 하는 시인 산문집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한는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합니다. 시를 좋아하는 손님이 있는데 시집 한 권 줄 수 있느냐고 문의도 합디다. 내가 글을 쓴지 한 30년 만의 일입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는 이 축복의 메시지에 나는 비로소 가슴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랐지요. 나이 70에 들면서 무었이고 다 손에서 놓으면서 문단에서도 은퇴를 결행 한 뒤였지만 나는 마누라님 앞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도 불러주고 국기배례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암수 고양이 한 쌍이 사는 집 같이 너무 조용하고 나는 늘 그 분 곁에 재직 중입니다.


남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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