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하루/김문억
시 쓰는 일 외엔 아는 것이 없지만
그나마 시 쓰는 일도 열량이 부족하여 길을 걷는다 매양 걷는다
어둑어둑한 집에서 나와 지글거리는 태양과 낮잠에 빠진 낮달을 보며
지나가는 자전거와 허리 굽은 할망구 제주갈치 자동차와 공사판 포클레인
움직이는 친구들을 짝사랑하고 어디 내가 있는지 어디 누가 있는지
벤치에 앉아 풀린 눈으로 요기조기 노크를 하다보면 산그늘이 들도록 굶어도 배 안 고프고
전화 한통쯤 있을 법한데 오늘은 바쁜가 보다 종일 먹통이지만
누구에게 말도 못 하는 이 뺨맞을 행복에 겨운 나날
돌아와
짐 풀어놓고
낱말들을 고른다
김문억 시조집<양성반응>중에서
퇴직을 하고 보니 작품 내용 같이 하는 일 없이 늘 단순하고 편안하다
하는 일이라고는 주변 없이 시나 쓰겠다고 해서 그러한지 하루 일과가 고요한 중에
바쁜 날도 있다.
쉬는 것이 쉬는 것인지 일 하는 일이 일 하는 것인지 뚜렷한 목표가 없다가 보니 부평초 같이 그냥 떠서 다니는 것 같다
돌아와 짐 풀어 놓고 낱말들을 고르자 하지만 알갱이 없는 쭉정이만 어지러운 것이 사실이다
낮잠 자는 낮달과 지나가는 자전거와 허리 굽은 할망구 공사판 포클레인 따위가 살아있는 증표로
행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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