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하루 목향 이명희
주어가 뚜렷하지 않은 채 두 발 동물로 다닌다
가공된 사람과 길고양이
누구에게 눈을 맞출지 고민한다
바지춤에 부끄러움을 숨긴 채 걷기만 한다
존재감을 거부하고 고개 숙인 남자
사양이 좋았던 컴퓨터의
버퍼링이 길다
걷던 길, 또 걷고, 돌고 돌아
하드 디스크에 에러가 났나 보다
더는 진화할 일이 없는데
어깨를 올린 채 왼쪽 길만 고집하는 한 줌의 자존심
사계절을 스쳐 지나가도 알 수 없는 투명 인간
낮이 겹겹의 어둠으로 깔린다
그림자가 짧은 남자에게
웃음소리가 야유로 접속된다
남자의 소심한 기운이
내게 숙주가 될까 봐 몸을 사린다.
시작노트-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어느 은퇴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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