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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4.03.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바람꽃/김문억
                                           
 
산 자여 일어서라
때가 되었다 나를 따르라
 
 나는 왕이로소이다.
 남양의 푸른 갈기를 세우고 신명을 앞세우고 가자 북으로 산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
  피곤한 구릉마다 코를 땅에 박고 살아있는 목숨을 깨워 가자 우리 긴긴 겨울 허전하고 배고팠던 북으로 가자
산야에 쓰러졌던 진달래며 개나리 철쭉을 깨워 앞세우고 깃발을 휘날리며 고개고개 너머 가자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듯이 살아있었다 .
김문억 시집 <나 오늘 밥 먹었음.1998선우미디어중에서



바람꽃이 피었다 얼마나 멋스러운 말이냐
바람이 어찌 꽃을 피운단 말인가 그 꽃은 무슨 색일까 바람색깔이다 산을 스치며 지나가는 무형의 바람이 어찌 꽃을 피우는가 시를 쓰는 나로서는 가슴 설레는 말이다
참으로 그 억지스러운 말맛이 주는 정감을 감내하기 어렵다 우리말 재미의 극치다
.
바로 이 때다.
우리 동네 초정리 앞 산 구녀산성은 해동으로 봄기운이 돌면서 바람꽃이 자욱하게 만개한다

평생을 살아 봐도 보지도 듣지도 못 할 그 바람꽃을 나는 어린 나이에 일찍 어머니로부터 터득하였다.
어느 해 춘삼월 이었다
부엌에서 뜨락으로 나서면서 넌지시 앞산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에이구바람꽃이 저렇게 폈네!’ 하시면서 한참을 바라보고 서 계셨다
지금도 그 모습이 사진처럼 환하게 떠오른다쌓인 눈이 녹아내린 앞산에는 자욱한 바람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내가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무척 쓸쓸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시절 농촌의 겨울은 춥다 못해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봄이 오는 서곡으로 희부옇게 앞산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꽃을 건너다보는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은 잠시 동안 회한에 젖어 있었다
 
80년대에 쓴 작품이다
그러나 80년대의 봄은 백성들이 기대했던 그런 화창한 봄이 아니고 회오리바람과 태풍을 동반한 군사통치 속의 억압된 서곡이었다
이 작품에서 화자의 바람꽃은 분명한 혁명이었다긴긴 겨울 통치 속에서 풀려나고 싶었던 봄바람은 외치고 있다 산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고 한다 산야에 쓰러져 있는 진달래며 철쭉 개나리는 억압당하고 있는 민초들이다
그런 의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오래 숙성이 되어 독한 술로 고여 올라왔으니 어쩜 그런 심상에서 나온 작품이 사설시조로 풀어낸 바람꽃인가 싶다
 
김 모 시인 말에 의하면 박통(박정희대통령)이 이글을 알았다면 당장 잡아다가 올가미를 씌워 죽였을 것이라고 했다. 문득 민청령 사건 생각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그런 의식까지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니다 봄의 서곡쯤으로 자연의 순리를 작품화 하고 싶었다
저 아랫녘에서 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의 외침으로 인해서 우리가 염원했던 봄은 올 것이며 사뭇 늦어지고 있는 풍요를 위하여 참고 견디는 인동초의 외침을 쓴 것뿐이다. 오히려 통일을 염원하는 뜻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까지 확대 해석을 했다고 하니 가만 살펴보면 틀린 감상은 아닌 것 같아 듣기에 나쁘지 않다.
작품 감상에 있어 다양한 이미지로 확대 해석 될 수 있는 글이라면 그 보다 더 좋은 시적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시조를 숫하게  써 왔지만 이처럼 온전한 몸으로 곱게 늙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재수가 좋았거나 검열에 들지 못 하는 시조문학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 장르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지금 수락산이 희미한 것도 저것이 매연인지 황사인지 안개인지 바람꽃인지 더욱 가늠하기가 어렵다
마음도 육신도 무디어지고 있다
아직 진달래 개나리 소식은 없지만 남녘에서부터 바람꽃은 어기차게 봄을 끌고 올라온다 
이 나라 금수강산에도 봄은 진정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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