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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4.05.06|조회수39 목록 댓글 0

5월/김문억


중랑천 둑방에서
잔술을 파는 할머니

줄 장미 빨간 꽃이 마약 주사를 하고 실실 웃는 대낮
버들가지를 흔드는 아지랑이가 너무 어지러워서 죽겠다고 죽겠다고 아휴 정말 죽겠다고 웃음꽃이 만발한 흰머리 키 큰 할멈
평상에 차린 잔술 값은 소주 한 잔에 500원 왕대포 한 잔엔 1.000원 선지 콩나물 술국 안주는 누구나 공짜라는데
담배 찾는 사람 있으면 낱개비 하나 쓱 공짜로 또 빼주면서 몸에 안 좋은 거라고 입을 삐쭉 하네요


잔술에 사그리 취한다

하늘귀신
땅 귀신.
-김문억 시「5월」전문.



내가 먹고 싶은 막걸리만큼은 평생토록 사주고 싶다는 나의 지극한 후배 한 사람이 있다. 천상병 시인처럼 막걸리 값 천원을 위해서 남들에게 손을 내 밀지 말라면서 한 말이다. 그 마음이 참 갸륵하다.
어느 날 5월 시를 읽은 이 사람이 의정부까지 나를 찾아와서 그 할머니네 집으로 가서 한 잔 하자고 한다. 내가 보낸 5월 시의 분위기가 썩 맘에 들었던가 보다

풋핫핫핫!

내가 크게 웃으면서 그 할머니는 나의 상상으로 만든 희망 속 사람으로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했더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았다는 것이다.
봄날이 가고 있는 이 화창한 계절에 정말 그런 할멈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쓴 뒤로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마음이 넉넉하여 조금은 헤픈 듯한 이 할머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감에 취한다.
용서와 관용은 사라지고 단죄와 응징으로 으르릉 거리는 세태에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살아 온 세상을 멀찌감치 밀쳐놓고 스스로의 인생을 관조하는 그런 분이 그리웠던 것인가.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고 늘 짝사랑을 하며 기다리는 어벙한 나의 주모. 내일쯤은 중랑천 길을 따라서 의정부 시장 뒷골목으로 한 번 들어가 보아야겠다. 혹시 또 알아? 깔끔하게 생긴 흰머리 키 큰 할멈을 만날 수도 있을지.
소설을 쓰는 최상하 선생님과 같이 우리가 어울릴 수 있는 소박한 술집을 찾아보겠다고 며칠을 두고 의정부 일대를 돌아 본 일이 있다. 허허롭게 큰 집도 말고 갑갑하게 주저앉은 집도 말고 적당하게 내려앉은 처마 위로 작은 북창 하나쯤 열려 있는 목로주점, 너무 늙은이도 말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쯤이면 더욱 좋은 주모 하나쯤 만날 수 있는 곳, 적당한 농담 한 마디쯤 주고받을 수 있는 주모랑 눈치 안 보고 밍그적거릴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술집이 대도시에서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추억의 옛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사를 해서 사는 곳은 도봉산 아래로 중랑천 상류가 되어 물이 맑고 쾌적한 곳이다. 이 곳으로 오고부터 왜 좀 더 일찍 오지 못했는지 후회를 했다. 앞으로는 수락산이 들어오고 도봉산이 뒤통수를 치는 산골짜기다. 활동이 많던 일선에서 물러나고 보니 아무래도 생활이 단조롭다
며칠 있으면 5월을 제패하는 줄 방미가 으스댈 것이고 춘흥을 못 이겨서 술안주는 공짜로 주는 흰머리 키 큰 할멈이 또 신기루처럼 너울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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