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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일 날/김문억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4.08.18|조회수19 목록 댓글 0
가난한 생일/김문억




1945년생 77늙은이다.
음력으로 4월생이다
음력 4월이면 목 타는 보리 고개다. 쪼르록 배고픈 투정이 그칠 날 없는 삭막한 계절이다
겨울이 풀리면서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거칠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지만 솥에 넣고 끓일만한 곡식이 없는 때다.
참다가 못해 씨 나락 콩을 내다가 볶아 먹고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가 밖으로 나간 아버지가 어디서 꾸어 왔는지 보리쌀 한 되를 갖고 들어왔다.
얘기 책 속 이야기로 듣던 흥부네 새끼들과 흡사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식구들이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나를 낳았다고 한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 간수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반갑다는 탄생의 희열을 느끼기는커녕 입 하나가 더 보태졌다는 낭패감이 앞섰으리라.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드셨을까 애를 낳고  한동안 있어도 애 우는 소리가 없더란다.
몸을 일으켜서 돌아다보니 애가 폭 엎어져 있어 새파랗게 죽어 있더란다.
놀라기도 했지만 잠시 생각에 들었다가 손을 뻗쳐 바른 자세로 제쳐 놓았다고 한다.
얼마가 지난 뒤에 애~앵 하고 탄생의 거룩한 신호가 울려왔다 한다.
그렇게 해서 나도 일제시대 맨 끝머리에서 시대의 불운을 안고 이 세상에 납시었다.
초정리 이장 되시는 변희수 선생께서 탄생의 소식을 듣고 우리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金文億이라 이름 지으시고 면사무소에 올렸다고 한다.
억조창생에 빛날 글쟁이가 될 것이라는 점지가 그 때 이장님 생각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히히! 웃긴다!
어머니는 내가 서른 살이 넘은 어느 해 생일 날 마치 설화 같은 탄생의 과정을 말씀 하시면서 대단히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머니의 소매 끝동을 얼른 잡아당기면서
“에휴 엄니 고마워요 그 때 나를 안 죽이고 살려 주어서 정말 고맙네요”
“그냥 놔 둘걸 그랬지?”
그렇게 해서 내 생일은 목구멍에서 단내가 나는 지독한 보리고개다.
대체 곡식을 생각하지 못 하고 쌀보리만 곡식이 되는 줄 알고 지내던 어수룩한 시절이다
그래도 해 마다 생일이 돌아오면 어디에 숨겨 놓았던지 쌀 한 줌을 꺼내서 쑥버무리를 해 주셨다. 쑥 향기가 감도는 어머니의 쑥버무리는 그냥 뜯어서 손에 쥐어 주어도 임금님 수라상처럼 풍성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고 받아먹기만 한 일이 지금 생각 해 보면 너무 미안스럽다.
‘어머니 참말로 고맙습니다.’
그때는 농약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해는 누렇게 익어야 할 벼논이 시뻘겋게 죽어 있기도 했다.
가을걷이를 하면 죽을 섞어서 먹더라도 꺼벙한 보리가 나올 때까지는 연명을 해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 했다.
그 시절이 나의 생일 무렵이다.
태어나면서 겪은 우여곡절이 가져 온 가난에 대한 면역이 생긴 탓인지 지금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학교에 갔다가 오면 부엌에 들어가서 열무김치를 훔쳐 먹다가 들켜서 등짝을 얻어맞던 형아 보다는 내가 더 모범이었다.
말로만 듣던 군대의 배고픔도 생각 보다는 그냥저냥 견딜 만 했다.
은근하게 달아올라 오래도록 뜨뜻 미적지근한 충청도 구들장 탓인지 보리 고개 정도는 알게 모르게 잘 견디면서 살아왔다.
밥을 늦게 먹는 경우가 있더라도 반찬 투정은 해 본 일이 없다. 이제야 나이를 들어가면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먹는 것만 갖고는 봄인지 가을인지 분간이 안 되는 풍요가 주는 이 행복한 시대에 와서 보면 살아있는 나날이 소중한 생일 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28.105일 동안 생일 밥을 먹고 지냈다. 金文億 이라는 이름값으로 가난을 딛고 태어나서 가난을 극복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던 것 같다.
물질이고 마음이고 가난하지 않고는 절대 시문학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음악이나 미술 하고는 다른 점이다.
살아있으면 생일이고 해가 뜨면 생일이다 오늘도 내 생일이고 내일도 내 생일이 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날마다 오는 생일의 기쁨은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생일날/김 문 억


내가 눈 뜨던 날
이 세상이 태어났다


흐릿한 세상이 조촘조촘 내 곁으로 다가오면서
소리가 와서 귀를 열고 해와 달이 번갈아서 힘찬 노동을 하는 동안
낮과 밤을 앞세우고 낯선 길을 찾다가 보면 가던 길을 또 가고 가던 길을 또 가면서
하루치의 밝은 빛을 두 손바닥에 받아든 오늘


날마다 생일 인 줄을
이제 조금 알겠네.
-내 시집에는 없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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