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 3/김문억
그냥 요 모양으로는 살기 싫어서
진흙 속에 묻혀서 살기 싫어서
진흙 바닥에서 흙만 먹고 흙탕물이나 일구는 우물 안 미꾸라지가 용龍 한 번 쓰고 싶어서 때를 기다리다가 우르릉 쾅쾅 소낙비 퍼붓던 날 빗줄기 움켜잡고 냅다 한 번 오르다가 빗줄기도 미끌미끌 미꾸라지도 미끌미끌 승천하지 못 하고 미끄러진 미꾸라지, 누런 배때기를 뒤집으며 우리 집 마당으로 툭 떨어진 미꾸라지가 멋쩍어서 얼른 몸을 숨긴다 .
용하다
용 되는 미꾸라지 꿈
소낙비 또 기다린다.
어릴 때 촌에서 보았던 일이다 여름 장마철에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갈 때면 우리 집 마당 가운데로 미꾸라지가 떨어져서 펄떡거리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것이 빗줄기를 타고 오르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하니 개천에서 용 되는 미꾸라지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죽은 고기는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고기는 거슬러 오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살기위해 타고난 천성이다. 진흙 속에 묻혀서 쓸쓸하게 살고 있던 천덕꾸러기 미꾸라지도 이 때다 싶어 소나기 퍼붓는 폭포를 타고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용오름으로 출세를 하고 기득권을 얻은 큰 고기들을 곁눈질 해 두었던 가 보다. 물과 물고기는 미끄럽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역설적이다 우리 집 마당으로 낙마를 했기 때문이다. 이놈이 태생적으로 미끄러운 몸을 갖고 나온 까닭을 잠시 잊었던 게다. 분수에 맞지 않게 억지스런 짓을 하고 거꾸로 떨어지고 나니 어디 등골이라도 부러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황급히 몸을 숨기던 모습이 어색하고 멋쩍었다.
글은 작가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런가 보다. 써 놓고 보면 내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보면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의식 보다 더 선명한 경우가 있다.
이 나이에 새삼 무슨 용꿈이냐 아니다 처음부터 난 미꾸라지를 자처하고 묻혀 있기를 즐겼다 밖에 소리가 안 들려서 좋다 물소리나 듣고 흙속에 묻혀 살며 몸무게나 불려야지 영양보충이 필요한 독자들이 날 잡으러 올지도 몰라.